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로 벌써 5번째 보고 있는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이다.
대동여지도는 어릴 적부터 배워서 알고 있지만 사실 김정호가 만든 조선시대의 지도라는 점 외에 딱히 아는 부분은 없다. 김정호라는 인물에 대한 기록도 거의 없지만 역사 교과서나 역사 프로그램에서도 김정호에 대한 내용은 거의 가르쳐주지 않거나 없기 떄문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김정호라는 인물이 당시 홀로 감내했어야 할 외로움, 사명감"때문이다.
아무리 우리나라가 좁다고는 하지만 사람 혼자서 전국을 누빈다는 건 지금도 어렵지만 이동 수단이 마땅히 없던 당시로서는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돈이나 명예가 아닌 단지 백성들이 편하게 길을 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런 지도를 그리고 만들었다는 점에서 너무 위대하고 존경스럽기 때문이다.
고산자 김정호 (古山子 金正浩).
1804년 태어나 1866년 사망한 조선 시대의 중인이지만 그가 남긴 역사적인 흔적은 오늘까지도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실 김정호에 대한 기록은 없다. 부분적인 기록은 있지만 전반적으로 그가 언제 태어나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배경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그의 신분에 있을 것이다.
중인의 신분이거나 잔반(몰락한 양반)일 것이라는 의혹이 있지만 뚜렷히 남은 기록은 없다.
다만 그의 집념이나 지도에 대한 어떤 생각, 지식을 봐서는 중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내 생각이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
영화는 소년 김정호가 왜 지도에 그토록 강한 집착을 갖게 됐는지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잘못 표기 된 지도만 믿고 길을 나섰다가 사망한 부친. 김정호는 지도 때문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현실에서 "제대로 된 우리나라 지도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게 됐고 성장한 후에는 그 지도를 만들기 위해 홀로 수 천리의 전국을 떠돌며 지도를 그리는 그의 삶을 그렸다. 지금으로치면 사채에 해당하는 고리대금까지 빌려가며 돈을 받고 팔 지도가 아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지도"를 만드는 김정호.
딸은 이제 시집을 갈 나이가 됐을 정도로 성장했지만 김정호는 딸에 대한 미안함보다도 지도에 대한 애착이 더 크다.
조금만 더 수정 보완하면 이제 지도로 길을 잘못 들어 애꿎은 죽음을 당하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아무도 반기지 않고 가족초자 이해해주지 못하는 지도에 대한 애착, 하지만 김정호는 그 어떤 고난에도 지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영화에서도 그렇지만 실제 역사적으로도 김정호는 조선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첫째는 백성들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지도였다는 점이고 둘째는 너무나 사실적으로 표현 된 정확성에 있었다. 1800년대는 국제적인 정세도 그렇지만 조선 사회도 혼돈의 시기였다.
정조 이후 몰락한 왕권은 회복 될 기미조차 없었고 왕권의 몰락은 곧 세도 정치와 탐관오리들의 부패를 의미했다.
백성들이 정보와 지식을 갖게 되면 양반들의 설 자리가 없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기에 당시 조선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볼 수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 아무리 영화라지만 지금의 시선으로 당시를 평가하는 건 부적절하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현실적이면서도 혹평 일색이었다. 누적 관객 100만에도 못 들었을 정도로 흥행에도 실패했지만 평가는 더욱 혹독했다. 연기평에서도 김인권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부적절하다는 평을 남겼는데 연기평이야 그렇다쳐도 "지도 때문에 가정을 소흘히 한다는 게 말이 되나?"라는 글들이 지배적이었다.
지도도 아닌 개인적인 이기심에 가정을 소흘히 하는 요즘 시대의 군상들도 있는데 지도 때문이라면 차라리 이해는 되지 않을까 싶다. 문제는 지금의 시대상과 당시의 시대상을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데 있다.
1800년대는 세도정치가 시작되고 혼란의 시기였다. 몰락한 양반이 속출하고 돈 잘 버는 중인이 양반의 족보를 사던 시대였다. 조정은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부정하였다.
또한 조선시대는 개인보다는 가문, 가문보다는 임금을 더 중시하는 시대였다. 그런 시대와 지금의 시대의 생각을 동일하게 보는 것은 굉장히 바보같은 생각이다.
난 오히려 김정호가 느꼈을 애환과 애민에 더 중점을 둔다.
그라고 왜 가족이 소중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누군가는 했어야 할 일이었고 그런 동기를 가진 이 중 한 명이 비로 자신이었다는 것을 느낀게 아니였을까 한다.
또한 김정호 혼자만의 노력이 아닌 여러 동조자들이 있었겠지만 실질적으로 팔도를 누비고 일일히 기록한 것은 바로 김정호 자신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대동여지도는 엄청난 기록물이며 인고의 업적이라 칭할 만하다.
쓸데없이 주관도 없이 남들이 하는대로, 다들 그러하니 따라하는 사람들보다는 김정호의 삶이 더 멋지고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김정호는 자신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그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설도 다양하다.
대체적으로 잘 알려진 것이 흥선대원군이 지도의 유출을 걱정해 목판을 압수, 불태우고 옥사시켰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김정호의 오랜 지기이자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신헌은 김정호로 인해 그 어떤 벌도 받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김정호는 남은 여생을 지도 편찬과 제작에 몰두하다가 죽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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