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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슈

76년 전 은행에 맡긴 돈 찾으려고 하니 "증거없어 못 준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에서 막노동을 하며 살아가던 조선인들, 이들은 귀국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는 우리에겐 지우고 싶은 상처일 것이다.

나라를 되찾겠다고 가문의 재산을 헌납한 독립운동가도 있었고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도 있었다.

독립운동가 후손치고 잘 사는 집이 없다고 한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들 뿐 아니라 강제로 일본에 끌려가 노동을 하며 살아간 많은 분들도 계시다. 그래도 독립운동가 분들은 언론에서 주목이라도 하지만 이 분들은 살기 위해 끌려갔을 뿐임에도 아무런 조명을 받고 있지 못하기도 하다.

 

14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막노동을 하며 악착같이 살았던 故김주식 할아버지는 1945년 해방과 동시에 귀국했다고 한다.

35년간 할아버지는 꽤 많은 돈을 저축할 수 있었고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액이라 집에 두기 불안했기에 이를 조흥은행 예천군 지점에 예치했다고 한다.

현금보관증에는 1946년 3월5일 조흥은행 풍천지점의 박종선 지점장이 예천군 보문면 미호동에 사는 김주식씨의 일본 돈 1만2천220엔을 받아 보관함을 증명한다고 쓰여있다. 김씨의 사인과 조흥은행 직인이 찍혀 있으며 다른 사람이 소유권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명시해두었다고 한다.

 

 

 

현재 가치고 100억이 넘는 금액, 돈 내달라고 하니 "맡긴 건 맞지만 믿을 수 없어 못 주겠다."는 은행과 금융당국

 

한국전쟁이 끝나고 김 할아버지는 은행을 찾아 돈을 인출하려고 했다. 하지만 돈을 찾을 수 없었다.

전쟁통으로 인해 자료가 유실된데다 사회는 혼란스러웠고 은행 역시 시스템상의 이유로 인출을 미루었다. 덮친 격으로 박

정희 정권에서는 경제발전을 빌미로 돈이 필요했던 시기라 돈을 더 찾지 못했었다.

화가 난 할아버지는 여러 기관을 돌아다니며 돈을 찾고자 했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홧병으로 세상을 떴다고 한다.

 

 

당시 조흥은행에 맡긴 예금 증서, 1920년대의 조흥은행 모습

 

 

그렇게 가족들은 은행에 넣어둔 돈이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살다가 1982년 손녀가 우연히 창고에서 해당 문서를 발견하게

되면서 다시금 현금 찾기가 시작됐다. 아들 김규정 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해당 사실을 듣게 되었고 부친이 남긴 돈을 찾고

자 백방으로 돌아다녔다. 조흥은행 국고 담당자를 어렵게 만나 해당 문서를 보여주게 되고 담당자는 " 우리 은행에서 돈을

맡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너무 거액이다. 약 100억에 달한다."라며 해당 돈을 주려면 당시 재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곧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던 돈은 또 다시 금융당국의 말에 의해 물거품이 됐다.

금융 당국은 "해당 문서의 진본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지급을 거절했기 때문. 

결국 조흥은행은 2006년 신한은행과 합병을 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할아버지는 다시 신한은행을 찾아 해당 예금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신한은행에서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지급을 거절하고 있다고 한다.

 

애초 김씨 할아버지가 맡긴 돈은 현재 화폐 가치로 약 70억원 수준이며 그간의 이자를 합친다면 100억원을 훌쩍 넘길 것이라고 알려졌다. 훔친 돈도 아니고 아버지가 평생 일제의 탄압 속에서 뼈빠지게 일해서 모은 돈을 고스란히 날릴 판이다.

 

 

 

부친이 남긴 예금증서를 들고 있는 김규정 할아버지. 현재는 손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고 한다.

 

 

| 은행 측의 주장은 어불성설 (語不成說), 은행은 당장 할아버지의 돈을 이자까지 합해 돌려줘야 한다

 

세월이 오래 지났다고는 해도 이는 애초 말이 되지 않는다.

첫째는 애초 돈을 맡긴 할아버지가 돈을 찾으려 했지만 당시 사회 배경을 이유로 인출을 거절하면서 지급이 어려워진 것이다. 둘째는 당시 조흥은행 담당자가 "우리가 맡은 게 맞다."라고 인정했다면 그것만으로도 해당 증서는 진본임이 드러난 것이다. 셋째. 은행의 자료 유실은 은행의 책임이지, 고객의 책임이 아니다.

고객은 그 난리통에도 해당 증서를 잘 보관했다. 따라서 자료를 분실한 은행이 감수해야 할 책임을 고객에게 전가하는 건 은행으로의 신뢰가 없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이다.

 

돈을 맡겼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시간을 끌다가 나중에 "믿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고객의 예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일까. 이 나라는 대체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전쟁통에 자료를 유실하고 분실하는 건 그만큼 수준이 낮다는 말이다. 조선시대 때도 많은 침략 전쟁이 있었지만 자료는 소중히 보관했었다.

나라가 한심하고 무능하니 늘 피해는 국민이 보는 게 아닌가.

G7같은 주접떠는 소리만 하지 말고 제대로 국격을 갖췄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