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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무비

허삼관 | 때론 기른 정이 더 나음을 보여주는 가족 영화

※ 본 포스팅의 이미지는 웨이브 다운로드(컨텐츠 구입) 후 시청하면서 캡쳐한 이미지임을 밝힙니다.

 

2015년 개봉영화 < 허삼관 >

 

 

배우 하정우가 직접 감독 및 주연을 맡은 영화 '허삼관'.

롤러코스터에 이어 두번째로 하정우가 감독을 맡았던 이 영화는 중국의 유명 작가 위화가 1996년 출간한 소설이 원작으로 소설에서는 1950년 ~ 60년대의 중국 북경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에서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와 60년대를, 등장인물 허삼관, 허옥란, 허일락 등 이름 역시 원작 소설을 따랐다.

 

개봉 당시 관객 수 약 95만을 기록하며 손익분기점인 300만에는 한참 못 미치는 성과를 거두었다.

바로 직전에 개봉해 1000만 관객을 기록한 < 국제시장 >과 비교되며 " 지나친 부성애를 과하게 강조했다. "는 비평이 잇따랐었다. 

 

하지만 중국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원작의 내용을 따랐을 뿐, 사실 부성애가 지나치게 강조 된 느낌은 아니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따지고 보면 아버지의 말에 따라 평생을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가게 역시 꿋꿋하게 팔지 않고 버텼던 내용의 < 국제시장 >역시 부성애와 신파를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 국제시장 >이 더 내용적인 면에서 수준이 높았기에 높은 관객 수를 기록한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허삼관 역시 영화로서 부족함이 없다는 뜻이다.

 

 

 

 

 

 

줄거리.

 

1953년 충남 공주.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국토 재건이 한창이던 시기 허삼관은 외삼촌과 함께 하루 하루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잘 살고 싶다는 꿈은 있었지만 부모님을 여의고 어렵게 사는 허삼관에게 결혼 역시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강냉이 장수의 딸로 동네에서 최고 미녀인 허옥란에게 마음이 있던 허삼관은 피를 팔아 허옥란에게 마음을 전하지만 옥란은 이미 동네에서 미군 제품을 판매하는 사업가 하소용과 사귀고 있었다.

 

허삼관은 옥란의 아버지를 찾아가 데릴 사위가 되겠다며 설득을 하고 옥란과 결혼에 성공한다.

그 후 11년 후. 허삼관은 옥란과 아들 셋을 두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행복한 일상을 보내지만 뜬끔없이 장남 일락이 하소용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고 삼관은 일락의 혈액형 검사를 한다.

 

11년간 하소용의 아들을 키웠다는 분노에 삼관은 일락을 무시, 차별하기 시작하고 아버지에게 잘 보이고 싶은 일락은 애간장을 태운다. 그러던 어느 날 하소용이 집안력에 의한 병환으로 생사 기로에 놓이자 일락을 데려가겠다는 제안을 해오고 그렇게 일락은 하소용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일락에 대한 분노에 시원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내심 일락이 마음에 걸렸던 삼관은 다시 일락을 데려온다.

하지만 일락 역시 집안력에 의해 쓰러지고 병원비를 구해야 했던 삼관은 피를 뽑기 시작한다.

 

 

 

 

 

| 기른 정이 때론 낳은 정보다 나음을 보여주는.

 

이 영화가 지나친 부성애를 표현했다고 혹평하는 것에 일단 나는 반대적 입장이다.

허삼관은 그 시대의 평범한 아버지였다. 핏줄, 혈연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시기에 자신의 핏줄이 아닌 그것도 아내의 남자였던 사람의 아들을 친자식으로 알고 살았다는 배신감과 분노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운 아들이지만 막상 안 보고 살려고 하니 끝내 아들과의 추억, 사랑이 그를 바뀌게 만드는 과정이 잘 드러나있다고 생각한다.

 

일락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아들이었다. 비록 핏줄은 달랐지만 자신이 애지중지 여겼던 큰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 큰 병에 걸렸을 때 피를 모조리 뽑아 병원비를 만드는 과정은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고 본다. 세상 모든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그러했을 것이니 말이다.

 

< 국제시장 >에서의 아버지는 집안의 가장이었고 그만한 대우를 받았다.

그러기에 모두를 위해 본인이 노력하고 희생하는 과정을 담았다. ' 허삼관 '에서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라 믿었다.

하지만 아니기에 상처를 받았고 그 분노와 배신감을 아들에게 전가했었다. 

같은 아버지지만 배경과 환경이 다르다. 같은 선상에서 놓고 논할 비교 대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