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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X파일

부정부패의 참극 ① 성수대교 붕괴 ( 1994년 )

야경이 아름다워 사진작가들에게 사랑받는 성수대교

 

 

한강에 있는 다리의 수는 모두 31개교.

이 중 성수대교는 중요한 서울 시민들의 출퇴근과 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11번째 다리이다.

이렇게나 멋지고 훌륭히 제 기능을 다하고 있는 다리이지만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끔찍한 악몽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경. 성수대교 상판 50m 가량 붕괴

 

금요일 아침이었다. 당시에는 주6일 근무제였기 때문에 관공서, 회사, 학교 역시 토요일까지 운영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금요일이 주는 행복감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추석을 보내고 한달이 지났을 그때 성수대교가 무너졌다는 소식이 속보로 TV를 통해 방송됐다.

 

 

성수대교 붕괴 당시의 모습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리 전체가 붕괴 된 것이 아니라는 점정도였다. 승합차1대, 승용차2대가 상판 트러스와 함께 추락했고 끊어진 다리에 걸쳐있던 16번 시내버스는 무게의 중심을 견디지 못하고 회전 후 그대로 떨어져내렸다. 출근길이자 등교길이었기 때문에 버스에는 학생들도 꽤 탑승해 있었고 이로 인해 약 30명의 사망자가 나오기도 해 시민들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당시 사고를 보도하고 있는 한겨례 신문

 

| 애초 부실시공 된 다리임에도 관리 감독 소흘, 붕괴의 원인이었다.

 

1994년에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TV뉴스와 신문으로 소식을 전해들어야 했다. 당시 성수대교는 총하중 32톤까지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졌지만 실제로는 과적 차량들의 진입 등으로 40톤에 육박하는 하중을 견디고 있었다고 한다. 가뜩이나 시공 자체가 부실 시공인데다 시의 관리 감독마저 소흘해 붕괴의 조짐조차 파악하지 못했었다. 이로 인해 당시 서울 시장이 경질되고 故김영상 당시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하기도 했했다.

 

이후 무너진 부분만 새로 만들어 활용한다는 초기 방침은 국민들의 정서를 반영해 1995년 현대건설이 새롭게 만들기 시작해 1999년 새롭게 개통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