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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X파일

대한민국 영구 미제사건, 개구리소년 실종 살인사건 ( 1991년 )

1991년 일명 '개구리소년'으로 실종 된 5명의 아이들

 

 

대한민국 3대 영구 미제 사건으로도 잘 알려졌지만 범국민적인 실종 아동 찾기 운동까지 전개 된 그야말로 1990년대 초 대한민국을 공포와 걱정으로 몰아넣었던 강력 사건이 있었다.

물론 최종적으로 실종 된 아이들의 시신과 유품이 발견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아직도 유괴범(혹은 살인범)을 검거하지 못한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실종 된 이들의 이름은 우철원(당시 13살)군을 비롯해 조호연(당시 12살), 김영규(당시 11살), 박찬인(당시 10살), 김종식(당시 9살) 등 5명이다. 이들은 사건 당일 동네에 있는 와룡산에 도롱뇽 알을 줏으러 간다는 말과 함께 와룡산 입구에서 인근 주민 등 여러 명에게 목격됐으나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1. 사건의 시작

 

지금은 그런 일들이 거의 없지만 1980~90년대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사교육 열풍이 강하던 시기는 아니였다. 대개 학교만 다녀오면 나머지 시간은 뛰어놀거나 그러는 경우가 많았다. 하물며 지방이라면 더욱 그런 경향이 강했다. 산과 들, 강가, 냇가 등이 모두 놀이터였기 때문에 어른들도 아이들이 놀러가거나 외진 곳까지 가는 것에 대해 크게 우려를 하지는 않았던 시절이기도 했다.

 

5명의 아이들은 와룡산에 도롱뇽 알을 줏으러 간다고 했지만 이 말이 "개구리를 잡으러간다."로 와전 돼 일명 <개구리소년>으로 더 알려진 사건이었다.

해당 아동들의 부모님들 역시 5명의 아이들이 단체로 간 점, 당시 산에 도롱뇽 알을 찾으러 가는 일은 흔했던 점에서 큰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저녁 시간이 다 돼도록 아이들이  귀가하지 않았고 부모님들이 경찰에 신고, 본격적인 실종 사건으로 수사가 시작됐다.

 

 

기업 및 관공서 등에서도 아이들 찾기 운동에 적극 나섰다.

 

실종 된 이들이 국민학생인데다 워낙 국민적인 관심사가 집중 된 사건이어서 노태우(당시 대통령) 역시 특별 지시를 통해 아이들을 무사히 찾을 것을 하달했다. 이에 특별 수사 본부가 구성되고 각 관공서, 기업 등은 벽보나 기업 홍보지에 현상금을 걸고 대대적인 실종 아동 찾기에 집중한다.

 

 

2. 황당한 제보 빗발쳐, 부모님들 가슴 미어지던 발굴 소동까지

 

국민적 관심이 뜨겁던 만큼 황당하고 무개념적인 제보들도 많았다. 외계인 납치설, 북한 공비 유인설, 사격장 오발사고설 등은 그나마 애교스러웠다. 일부 무개념한 사람들은 현상금을 노리고 거짓 제보를 하거나 장난 제보를 하는 등 실종 아동 부모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만들었다. 

실제로 경찰은 한센병 환자들이 병 치료를 위해 아이들을 유괴, 살해했다는 소문을 듣고 강제적인 한센병 환자촌을 대대적으로 수사해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故김종식군의 집 화장실 및 부엌 등을 부수며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 자료 : 그것이 알고싶다

 

 

그 중 가장 황당한 주장은 바로 한국과학기술원 심리학 박사 김O 심리학자의 말이었다. 실종 아동 중 한 명인 김종식군의 아버지 김씨가 아이들을 자신의 집에 암매장했다는 주장을 제기해 온 인물이었다.

그는 그 주장의 근거로 "김군의 아버지가 자신이 두 차례 방문했을 때 화장실 부근까지 따라나와 감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협박전화 분석 때에도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혹시나 하는 경찰은 1시간 30분가량 김씨의 집을 샅샅히 수색했지만 시체는 커녕 관련 된 증거 한 올 나오지 않아 국민적인 공분을 사기도 했다. 김씨는 결국 아이들의 시신을 찾았다는 뉴스도 보지 못하고 2001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2002년 9월 와룡산 중턱 부근에서 4구의 유골과 신발 등 물품이 발견된다.

 

 

3. 잊혀질 쯤 나타난 아이들의 유골, 그러나 범인의 행방은 오리무중

 

IMF를 겪고 2002 월드컵을 치르는 등 많은 일들이 있어 국민들의 관심이 뜸해질 때쯤 뜻밖의 소식이 전해진다. 대구시 달성구 용산동 성산고교 신축공사장 뒤편 500m 떨어진 와룡산 중턱 세방골 부근에서 4구의 유골과 신발 등 개구리 소년들의 유품이 발견된 것이다.

 

다시금 <개구리 소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거워졌다. 1990년대보다 발전 된 과학수사기법, 발견된 유골 및 유품 등을 면밀히 조사해 진범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 국민들 역시 아이들을 잔인하게 살해, 암매장한 파렴치한이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당시 경찰의 현장 보존과 유골 등 증거가 될만한 것들에 대한 보존 처리가 미흡했다는 점도 문제였지만 강력 사건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었다는 문제도 여실히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살해 후 14시간 이내에 암매장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외에 어떤 정황 증거나 범인을 색출해 낼 만한 증거는 찾지 못했다.

 

 

4. 영화로도 제작 된 사건

 

2011년 개봉한 영화 <아이들>

 

해당 사건은 2011년 영화 <아이들>이란 제목으로 영화화됐다. 180만 명이 볼만큼 화제를 불러모았고 '반드시 검거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표현된 영화이기도 했다. 이미 2006년 공소시효가 만료돼 이제 범인을 찾는다 해도 처벌을 할 수는 없지만 영화 개봉을 통해 실종 아동 부모들은 "왜 죽였는지만 알려달라. 더는 묻지 않겠다. 이유만 알려줘도 5,000만원을 사례하겠다."라며 호소하는 한편, 민간조사 영역을 법적으로 합법화해 지속적인 수사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5.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사건, 해마다 셋방골에 아이들 추모행사

 

어느 덧 아이들이 실종 된 지도 30년 정도가 다 되었다. 만약 이들이 살아있었다면 모두 30대 후반~40대초반의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지겠지만 아직도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하루 하루 아이들을 그리며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매년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 된 셋방골에서는 추모 행사를 열고 있다고 한다.

 


처벌과는 별개로 꼭 진범이 잡혀 부모님들과 억울하게 죽어간 아이들의 넋이라도 달래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