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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무비

자전차왕 엄복동 | 독립운동도 아닌 체육인도 아닌 실화를 애매하게 만든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자전차라는 말이 요즘의 우리에겐 다소 생소하게 들린다. 자전차는 자전거의 옛 이름이다.

아마도 당시 걷는 것보다 빠르고 소나 나귀처럼 많은 짐을 지고도 빨리 이동할 수 있어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차"라는 뜻에서 그런 듯 하다.

그런만큼 당시 자전차(자전거)의 값은 상당히 비쌌다고 한다. 어중간한 부자들도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자전차왕 엄복동의 실제 모습 / 출처 : 인터넷

 

 

자전차왕 엄복동이 개봉 될 때만 해도 논란이 많았다.

엄복동이라는 인물도 생소하지만 그는 독립운동가나 나랏일을 한 애국지사도 아니기 때문.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자전거 절도 사건"때문이었다.

지금도 고급 자전거는 몇 백만원에서 몇 천만원에 이를 정도지만 대부분은 몇 십만원에서 몇 백만원 수준이면 자전거를 구매할 수 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90년대 초만 해도 외국 MTB의 경우 600만원 정도였는데, 이는 당시 소나타의 가격이 600만원이었다고. 따라서 거의 차 1대값이였다. 1990년대에도 그럴 정도인데 1910~30년대면 말 다했다.

당시 자전차 가격은 약 2~3만원대. 당시 환율로 본다면 엄청난 금액이다. 그때 쌀 8kg의 가격이 2,300원이었다고 하니 거의 10배가 넘는 금액이다.

이를 1대도 아니고 10여대를 넘게 절도했었다고 하니 지금으로 치면 생계형 절도가 아닌 전문 절도 수준이라 봐야 할 것이다.

 

엄복동의 절도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영화에도 불운이 닥쳤다.

범죄자의 일대기 영화를 왜 개봉하는가에 대한 의문과 불만이 폭주했다. 더불어 주연배우 비(본명 정지훈)가 음주 상태에서 자신의 SNS에 글을 게재하면서 비난의 분위기는 급물살을 탔다. ( 사실 비가 호감형 스타는 아니니까. )

그런 악조건 속에서 영화는 개봉을 했고 개봉 1개월도 안돼 17만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끝으로 영화는 극장에서 내려졌다. ( 현재 VOD서비스 중 )

참고로 이 영화의 제작비는 약 150억원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폭망한 영화인 셈.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 원인은 아무런 특색이 없기 때문.

엄복동이라는 실제 인물이 당시 조선 사회에 보여준 일화 등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훗날 그가 절도범이 되었든 무엇이든 말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가 대회 우승을 하는 시기까지만을 그리고 있어 사실상 그의 일대기 중 극히 일부를 보여주는 것이라 무방하다고 봐도 된다.

그렇다면 과연 관객들은 단지 엄복동이 말년에 절도를 하고 부랑자 생활을 해서 거부 반응을 보였을까?

아니면 유명한 인물도 아닌데 영화화되어서 짜증났을까?

 

답은 "아니다."일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영화의 주요 특징이 없다는 데 있다. 독립 운동도 아닌, 그렇다고 진정한 체육인도 아닌....그저 당시 자전거를 너무나 타고 싶던 청년을 말하고 있다. 애국단원 김형신(강소라)을 짝사랑하는 장면 역시 실제인지는 모르나...극 중 엄복동이 마지막 대회에서 우승하는 장면은 민족이나 조국은 안중에도 없었다.

 

자신을 위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자전거를 탔을 뿐이었다.

그런 영화에서 관객들은 "엄복동을 무엇으로 봐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밖에는 없다.

황제에게 받은 하사품을 독립자금으로 쓴 것도 아니고, 민족을 위해 자전거 대회를 나가고자 했던 것도 아니니 말이다. ( 실제에서는 어떤 목적으로 대회에 참가하셨는지 모르겠다만 영화에서는 그렇다는 말. )

 

개봉 시기에 주연배우 비는 SNS에서 "정말 고생한 영화"라고 밝혔다. 지구를 얼마만큼 돌 정도의 거리를 탔고 훈련을 얼마나 했는지는 관객이 궁금하지 않다. 주연 배우가 영화를 위해 사전 준비를 하고 노력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고 또 그만큼의 개런티를 받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나 고생 좀 했으니 봐줘"라는 말인데...이는 관객에게 통용되지 않는다.

 

어쩌면 아주 좋은 소재를 영화가 망쳐놨는지도 모르겠다.

촬영하느라 다들 고생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