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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무비

남한산성 | 명분만 내세운 약자들의 현실을 보여 준 역사

2017년 개봉 영화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과거 도성 한양을 방어하는 주요 산성으로 흔히들 조선시대에 축조 된 성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신라시대부터 축조가 시작 돼 통일신라,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보강 된 산성이라고 한다.

경기도 광주시에 있으며 최근에는 둘레길이나 등산 코스도 사랑받고 있지만 과거 조선 시대 굴욕의 시기를 겪은 비운의 산성이기도 하다.

 

영화 <남한산성>은 2017년 개봉, 약 38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남한산성은 조선 인조 임금 시기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손익분기점은 약 500만으로 결과로만 본다면 흥행에는 실패한 영화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역사적 고증을 거쳐 꽤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아마도 우리 민족의 비굴했던 치욕을 약 400년이 지났다고 해도 지켜보기가 싫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 <남한산성>은 우리의 치욕스러운 역사의 순간이기도 하지만 크나 큰 교훈을 준 역사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반드시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 줄거리 - 

 

 

정묘호란에 이어 2차로 청의 대군이 국경을 넘어 수도 한양으로 진격했다. 이미 사기가 꺽인 조선군은 대패를 거듭하고 인조와 조정 대신들은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한다. 그리고 항전의 의지를 다지기도 전에 조정은 두 파로 갈리게 된다.

명과의 신의를 지켜 맞서 싸우자는 친명파와 청과 화해를 해 훗날을 도모하자는 친청파는 연일 계속 대립을 하고 인조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대신들을 독촉하기만 한다.

하지만 점점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성 내의 병사들, 그리고 청의 지원군이 도착하자 인조는 결국 최후의 결단을 내리게 된다.

 

 

 

 

| 명분만 내세운 한심한 조선 조정,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다고 본다

 

영화를 보면 스스로를 지킬 국방력없이 강대국에 의존하고 명분만 내세우는 것이 얼마나 참담하고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인조가 청 황제에게 끌려가 했다고 하는 '삼배구고두례'는 원래 손을 뒤로 결박당하고 입에 구슬을 물렸으며 목에 포승줄을 이어 죄인의 행색으로 군주 앞에 끌려가는 것이라고 전해지지만 당시 인조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고 스스로 청 황제의 앞까지 걸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일국의 왕이 이웃 나라 왕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한다는 것은 꽤나 치욕스러운 모습이긴 하다.

 

당시 인조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게 된 배경은 외교의 실패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국방력을 키우지 않고 강대국에 의존하는 바보같은 당시의 시대상에 있다고 본다.

또한 당장 외세가 침입을 하고 백성들이 약탈과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명분과 사대주의만 내세우는 당시 조정의 대신들 역시 아무리 유교와 사대부 정신이 강한 시대라고는 하나, 꽤나 답답하고 한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 나라도 보면 중국의 눈치, 미국의 눈치, 북한의 눈치 속에서 스스로 자주 독립, 평화주의적 원칙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합리화와 자기 명분에 불과하다고 본다.

우리 정치인들도 영화 <남한산성>을 단체로 재관람하면서 앞으로 우리 나라를 어떤 식으로, 그리고 어떤 외교를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