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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슈

前 중정부장 김재규 사건 재심 확정, 10.26 사태는 혁명인가 내란인가?

1979년 10월 26일 당시 중정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한 사건이 있었다.

 

 

 

지금까지 故김재규 중정부장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은 대통령을 저격한 반란자에 불과했다.

모두가 그렇게 들었고 공부했기에 김재규에 대한 이미지는 사실 썩 좋지 않았다. 시대가 변하고 21세기에 들어서

야 故김재규 중정부장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서서히 나오기 시작했다.

故김재규 중정부장을 다룬 TV프로그램은 제법 있었다. 드라마는 물론 각종 시사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이를 심도

있게 다룬 바 있다.

 

법원은 최근 故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고 집행됐던 故김재규 중정부장의 사건에 대한

재심을 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는 지난 2020년 JTBC가 확보한 당시 군사법원 관계자에게서 얻은 53개의 육

성테이프가 나타나면서이다. 유족들은 해당 보도를 했던 기자로부터 자료를 확보, 재심을 청구했다고 한다.

 

 

 

유족 측 " 내란이 아닌 유신독재에 대한 항거 " 주장, 법원 " 재심 사유 충분하다 "인정

 

당시 故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 그 자체였다. 지금도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현재의 시각에서 1970년, 80년대를 함부로 평가, 재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각 시대마다 그 시대의 문화, 분위기, 흐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현재의 우리에게 전기는 매우 익숙하고 일상적인

것이지만 1900년대만 해도 신기함 그 자체였다.

 

유족 측은 " 박 대통령 저격은 내란이 아닌 유신독재에 대한 항거 "라고 주장하고 있다.

글쎄. 이 부분이 굉장히 민감하고 故김재규 사건의 핵심 요소가 아닐까 한다. 물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한 김

재규는 혹독한 고문과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1970년대 당시 대통령을 살해했으니 그 이후의 과정은 안

봐도 뻔한 일일 것이다.

법원도 故김재규의 고문 정황과 증거, 제대로 보호되지 못한 사법권에 대한 이유를 들며 " 이것만으로도 재심이 될

이유는 충분하다. "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김재규는 1980년 5월 사형이 집행됐다.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기에 함부로 이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건 잘못 된 일이지만 지금까지 TV를 통해 접한 상황으로

만 본다면 故김재규의 저격은 항거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게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알려진 김재규의 행적은 대통령 저격이 전부이지만 당시를 재구성했던 여러 프로그램들을 보면 당시 김재

규는 경호실장 차지철에 상당한 불만과 불신이 있었고 점차 권력구도에서 박정희의 눈 밖에 나는 것에 대한 스트레

스가 심했던 걸로 그려졌으니 말이다.

 

박정희 체제에서 당시 권력의 상징과도 같은 중앙정보부장까지 올랐던 그가 유신독재에 대한 항거의 의미로 대통령

을 저격했다는 자체가 쉽게 납득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고 어쩌면 이는 故김재규의 행보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알지

못한 교육의 부재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진실은 법원이 판단해 줄 것이고 만약 고인에 대한 사실이 알려진 것과 다르다면 한참 늦었지만 명예회복이 이루어

지길 바랄 뿐이다. 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올바른 재평가는 후대의 몫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