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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무비

어린 의뢰인 | 역할을 제대로 못할 기관과 시설이라면 필요없다.

2019년 개봉작 <어린 의뢰인>

 

 

많은 분들이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를 좋아할 것이다. 그것은 실제 있었던 일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나 메시지가 픽션보다는 더 강렬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과 성격으로 이루어져있고 살아가다 보니 때로는 믿기 힘든 일들도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사회가 돌아가는 굴레이기 때문에 무조건 나쁘다, 옳다를 논하긴 어렵지만 어떤 일들에 한해서는 분명하고 명확한 선과 악을 정의 내려야 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어린 의뢰인>은 2013년 경북 칠곡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을 토대로 제작한 영화이다.

당시 언니 12세 B양에게 동생 8세 A양을 학대, 폭행 사망하게 했다는 거짓 진술을 하게 만든 친부와 계모의 파렴치한 행동이 세상에 드러나 경악케 한 사건이었다.

 

이 영화는 뻔한 아동 학대, 어쩔 수 없는 부모 자식간의 천륜 관계, 그리고 법과 사회시설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법과 시설의 권한만을 생각하는 게 아닌 아이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사회 인식과 시스템이 자리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나는 이 영화를 단지 한 편의 영화가 아닌 진정 어른으로, 그리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어떤 생각과 자세로 곤경에 처한 아이들을 대해야 하는지 공부할 수 있는 하나의 자료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감상했다.

 

 

 

 

 

- 줄거리 -

 

너무 어릴 때 엄마를 여읜 다빈이와 민준은 엄마 얼굴은 모르지만 그래도 친아빠와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비록 무뚝뚝하고 무서운 아빠지만 그래도 다빈은 어린 동생 민준을 알뜰히 챙기며 엄마와 누나의 노릇을 톡톡히 하는 초등학생이다.

 

오로지 최고만을 지향하는 정엽은 각종 기술 자격증, 사회 상식과 지식을 겸비함은 물론 변호사 자격을 지닌 청년이지만 매번 로펌 채용 지원에서 떨어지고 어릴 적부터 자신을 돌봐 온 친누나의 집에 얹혀살고 있다.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동생이 매번 한량처럼 지내는 것이 못 마땅한 정엽 누나는 그런 동생을 아동복지센터에 취직시키고 마침 공석이 생기는 터라 정엽은 복지센터 직원으로 근무를 시작하게 된다.

 

한편 어느 날 아빠가 데려 온 새엄마의 등장에 마냥 신났던 다빈과 민준은 곧 새엄마의 학대에 두려운 나날을 보내게 되고 다빈은 용기를 내어 지구대를 찾아가게 되고 아동 상담이라는 이유로 정엽과 만나게 된다.

정엽은 선임 직원과 다빈이를 데리고 집으로 찾아가 보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현실을 어렴풋히 알게 된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매일같이 정엽을 찾아오는 다빈과 민준.

아직 어린 아이들이라 딱한 마음에 조금 잘해줬을 뿐인데 매일같이 찾아오는 다빈과 민준이 귀찮은 정엽.

그리고 마침내 정엽에게 대형 로펌 대표와의 자리가 마련되고 정엽은 로펌에 입사하면서 복지센터를 관두게 된다.

아쉬워하는 다빈과 민준에게 "곧 돌아온다."는 무의미한 약속과 함께 서울로 떠난 정엽.

 

 

 

 

 

변호사로의 성공을 꿈꾸며 들뜬 하루를 살아가는 정엽과 달리 다빈과 민준은 새엄마의 눈치와 기분을 살펴야 하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정엽이 준 돈을 발견한 새엄마는 모진 학대를 시작하고 동생 민준이 폭행으로 인해 사망하고 만다. 새엄마는 촉법 소년의 경우 형사적 처벌이 안된다는 것을 이용, 이제 겨우 10세인 다빈에게 친동생을 때리다 죽이게 됐다는 자백을 하도록 강요하고 겁에 질린 다빈은 이를 받아들인다.

 

그 소식을 들은 정엽은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하고 경찰, 로펌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모두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거절을 하고 이에 화가 난 정엽은 스스로 로펌을 관두고 다빈이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나서게 된다.

 

 

 

 

| 아직도 구시대적인 발상과 인식에 사로잡힌 대한민국 사회를 다시 보게 만드는 영화

 

부모와 자식은 천륜이라 했다. 오직 하늘만이 짝지어준 관계이기 때문에 그 어떤 관계, 사람 사이보다 더 소중하고 고귀한 관계로 인정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천륜도 이제는 모두 옛 말이 되고 있다.

돈 앞에 자식을, 부모를 죽이거나 아무렇지도 않은 존재 취급하는 사회에서 과연 천륜이라는 이유로 선을 긋고 방치하고 방관하는 사회 시스템이 올바른지에 대해 말이다.

 

외국의 경우 아동 학대가 의심되는 정황만 있어도 경찰과 사회복지 센터가 공동으로 부모의 자격을 중지하고 개입해 아동들의 복지와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시스템인데 반해 국내에서는 "그래도 아이는 부모가.."라는 인식 때문에 법의 개입을 차단하고 있다. 영화의 소재가 된 칠곡 아동 학대 사건 뿐 아니라 얼마 전 세상을 눈물짓게 한 정인이 사건만 하더라도 일부 정신나간 어른들의 행위가 아닌 '막을 수 있음에도 방관한 사회의 문제'임이 드러났음에도 우리 사회는 계모와 방관한 친부만을 탓할 뿐...남의 가정 일이라는 이유로 안일하게 바라 본 사회의 시스템은 탓하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는 공감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

영화에서도 그러한 사회 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빈이 새엄마의 학대를 알리기 위해 찾은 지구대에서 경찰은 "부모가 야단 좀 쳤다고 신고하러 오는...쯧쯧."이라며 아이가 스스로 지구대에 찾아 왔음에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공감능력이 부족한 것이며 자신이 겪지 않았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이나 아픔, 고민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이는 꼭 어른들의 인식 개선으로 달라질 문제는 아니다. 어린 아이라고 할지라도 올바른 교육을 통해 어른과 아이가 모두 인식을 바꿔나가야 한다. 그래야 아동학대, 입양에 대한 문제들이 조금은 더 개선될 수 있다고 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참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됐고 분노를 하게 됐다. 그만큼 배우들의 연기 또한 훌륭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