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역경의 아이콘이라고 하기엔 당시 고생했던 가수들이 너무나 많을 것이다.
하지만 스타가 된 후에도 고난과 역경을 겪은 가수는 아마도 故송대관이 유일할 것이다. 남들은 한번도 겪기 힘들
다는 채무 문제는 수 차례 겪었으니 말이다.
" 쨍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 "로 유명한, 그리고 정 때문에, 네박자, 차표 한장으로 유명했던 가수.
가수 송대관이 7일 오전 심장마비로 가족과 팬들의 곁을 떠나 영면에 들어갔다고 한다.
고인의 팬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TV에서 종종 보였던, 그리고 음악 프로그램에서 들었던, 내 어머니가 즐겨 부르시
던 그 노래를 불렀던 그 가수이다.
가수, 예능 모두 성공적으로 소화해낸 만능엔터, 하지만 채무로 인해 고통받은.
송대관은 1946년 6월 전북 정읍에서 출생해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무명가수로 기약없이 전전하다 1971년 본인의 처지를 가사로 작성, 담은 노래 '세월이 약이겠지요.'를 불러 반응을
얻었고 1975년 국민적 대히트곡 '해뜰 날'을 발표한다. 현재 이 노래는 현재까지도 화자가 되는 곡이다.
독립운동가 후손이기도 한 고인은 자신이 작곡, 작사한 노래들을 모두 자신의 심경을 근거로 해서 만들었고 이 곡들
은 대부분 큰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7살이나 어리지만 늘 티격태격하며 코믹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태진아와의 만담식 예능이 큰 사랑을 받기도 했
다. 신현준-정준호 콤비보다 이들의 코믹 우정 만담이 더 앞섰다.
송대관은 가수로도, 예능으로도 성공한 대한민국에서 몇 안되는 전설급 연예인이었다.
종종 예능에 출연, 재치있는 입담을 선보여서인지 10대부터 70대까지 송대관을 모르는 국민은 거의 없을정도로
큰 인기를 구가했지만 돌연 음악활동과 TV에서의 모습을 감추었다.
훗날 알려진 것이지만 아내 분의 사업 실패에 따른 채무관계 때문에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
다는 내용이 알려지게 됐다. 또한 그 사건으로 인해 방송사로부터 1년간 출연정지를 받으면서 활동을 할 수 없게
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복귀 직전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송대관의 엄청난 채무는 사실 아내 분의 사업실패로 생긴 것인데 송대관은 생전 인터뷰에서 아내에 대한 원말이
없느냐는 질문에 " 아내가 아니였으면 오늘의 나도 없었다. "라며 아내에 대한 사랑을 내비쳤다고 한다.
이렇게 어린시절 보아오던 연예인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접할 때면 세월의 무심함을 느낀다.
어느 날 훌쩍 왔다가 이렇게 훌쩍 떠나는 것이 인생이라면 왜 이렇게 아둥바둥거리며 살까하는....
많은 히트곡으로 온 국민을 웃겼다, 울렸던 가수 故송대관.
비록 팬은 아니였지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삼가조의를 표하고자 합니다.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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