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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무비

천문 : 하늘에 묻다 | 단지 우리 것을 만들고 싶었던 임금과 신하의 이야기

 

 

두 연기파 배우가 만났다. 영화 <프리즌>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익호 역으로 대중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명배우 한석규와 꾸준히 영화에서 선 굵은 역할로 인기가 높은 최민식이 오랫만에 만났다. 아마 두 배우가 직접 호흡을 맞춘 것은 1994년 MBC드라마 <서울의 달>이 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대학 선후배인 두 배우는 최민식이 2살 형이다. 모두 동국대학교 연영과를 졸업했다.

 

최민식은 1989년 KBS 드라마 <야망의 세월> 꾸숑 역으로 데뷔, 1991년 KBS 드라마 남자 신인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써 그 가능성을 예고했다. 한석규는 1990년 KBS 공채 22기 성우로 데뷔했지만 1991년 MBC공채 탤런트 20기로 다시 방송계에 들어간다. 그리고 1993년 인기 드라마 <아들과 딸>를 통해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다>는 어떤 영화?


천문은 세종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조선 초 성군으로 기록되고 있는 세종대왕과 관노 출신으로 종3품 대호군에 오를 정도로 총애를 받았던 조선 최고의 발명가이자 과학자 장영실에 대한 시대극 영화이다.

장영실은 본래 원나라 출신 아버지가 왕조가 몰락하자 조선으로 들어온 중국계 사람이다. 이후 동래현 관청의 노비로 생활하였으나 태종 때 그 비범한 재주를 높이 평가 받아 궁궐로 발탁되었다고 한다.

 

세종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장영실의 재주를 알아보았고 즉위 후 정5품을 하사하는 등 장영실의 재주와 인품을 높이 샀다. 이후 알려진 대로 측우기, 해시계, 자격루 등을 세종의 명을 받아 장영실이 개발하였고 결국 대호군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명나라의 압박과 조정 대신들의 사대주의적 원칙에 부딪혀 장영실은 안여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곤장 80대형을 받았다는 기록을 끝으로 장영실에 대한 기록은 사라진다.

 

 

 

 

 

역사적 기록은  없지만 아마도 세종은 장영실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곤장형을 명하고 그것을 끝으로 장영실의 기록을 모두 삭제한 것이 아닌가 한다. 당시 장영실은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토대로 각종 기구들을 만들어 냈고 이는 명나라의 오랜 연구와 제작 기술을 뛰어넘는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국력이 명에 비해 약하였기에 뜻을 거스릴 수 없었으나 장영실을 명에게 내준다면 그것은 조선으로서는 크나 큰 손실이자, 평생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할 지도 모른다는 세종의 계산이 아니였을까.

 

 

 

 

 

| 단지 "우리 것"을 만들고자 했던 임금과 신하의 이야기

 

세종은 잘 알려진대로 우리 한국사에 있어 위대한 성군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광화문에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 것도 그렇고 1만원권 지폐에 세종대왕의 초상화가 들어간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무엇보다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던 조선 시대에 출산 휴가를 시행하고 또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재주가 좋고 뛰어난 인재를 두루 등용하고자 했던 임금이었다.

 

세종은 해시계, 측우기, 자격루 등을 만들어 백성들이 정확한 시간과 주기 등을 알길 원했고 또 천문 관측기구를 만들어 생업에 더 편리하길 원했던 임금이다. 또한 장영실은 그런 세종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 열악한 환경에서도 뛰어난 기구들을 개발해 세종이 바라던 조선 만들기에 일조를 했던 공신임이 틀림없다.

 

명을 이기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의 것, 우리의 기술"을 원했던 세종과 장영실.

비록 원대한 그들의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그러한 도전 정신과 믿음, 마음이 조선의 500년 역사와 오늘 날 한국을 만든 것이 아닐까 한다.

 

상업적 재미는 없었지만 무언가 뜨거움을 느끼게 했던 영화.

< 천문 : 하늘에 묻다. >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