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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슈

발렌타인데이보다 더 뜻깊은 날. 안중근 의사

온라인 역사 교육 캠페인, 발렌타인데이보다 의미있는 날 / 자료 : IPN뉴스

 

 

자랑스럽고 좋은 것만 기억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이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를 보면 좋았던 것보다는 침략과 침탈의 안 좋은 시간이 더 많았던 굴곡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단일 민족, 반 만년 역사라는 전통과 의미만을 기억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과 가정, 집안을 희생시킨 분들에 대해서는 말로만 "고맙습니다."라고만 할 뿐,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2월 14일. 오늘은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아는 발렌타인데이이다. 며칠 전부터 상점에는 온갖 상품들이 진열되고 고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하지만 이런 상술에 포장 된 날보다도 더 의미있는 날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모르고 있었다.

 

 

| 일본인조차 매료 된 독립투사 안중근

 

안중근 의사는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하고 잘 알려진 위인이다.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에게 3발의 총탄을 명중시키며 대한독립의 불씨를 되살린 인물이다.

이 역사적인 일로 인해 안중근은 사형을 선고받고 32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사실 안중근 의사의 사형과 관련 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사형을 선고받고 어머니를 걱정하는 아들에게 의사의 어머니는 "아들아.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여긴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라는 옥중 편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이를 뒷받침할 자료나 증거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편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찾을 수 없지만 안중근 의사의 동생들이 면회 왔을 무렵, 동생들이 안중근 의사에게 어머니가 손수 지은 수의를 전달했고 "혹 사형을 선고받는다면 깨끗히 받아들이고 죽어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라는 말을 전했다고는 한다. 

 

 

안중근 의사, 그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이 있다.

 

 

편지의 진짜 유무, 사실 유무가 그리 중요하진 않다. 안중근 의사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한 목숨을 내놓았으며 사형을 당하는 순간에도 일제에 굽히지 않던 기개를 보인 위인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의거일과 서거일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후대의 사람으로써 우리가 정녕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은 아직도 친일을 청산하지 못한 점,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지금도 찾지 못해 조국으로 가져오지 못한 게 아닐까. 

 

이미 지난 일이니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 된 일이다. 그런 일이 반복된다면 나라의 위기에 누가 선뜻 나서겠는가. 정부는 그런 부분을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들 밥그릇에만 집중하지 말고....100년 전 오늘 사형을 선고받은 안중근 의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