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유정이라는 연예인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꼭 출생연도를 떠나 노유정은 이제 연예인, 배우, 방송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방송계에서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다. 1965년생으로 올해 57세인 그녀는 1986년 MBC 특채 코미디언으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당시에는 특채로 코미디언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1988년 MBC <일요일 밤의 대행진>에서 활약을 하기도 했지만 크게 주목받진 못했다.
노유정이 배우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1995년 SBS에서 방영한 시트콤 <LA 아리랑>이였다.
LA로 이민간 한인 가족들의 삶을 그린 시트콤으로 실제 LA에서 국제변호사로 활동 중인 홍세봉 변호사님의 이야기를 모토로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원래 기획 의도는 의사였으나 제작 여건강 변호사로 변경되었고 OST 역시 홍세봉 변호사님이 직접 작사,작곡한 곡으로 직접 부르기도 했다.
탤런트 이영범과 1994년 결혼, LA아리랑에서 부부역할로 함께 출연해 인기
시트콤에서 부부 역할로 등장을 했는데 아무리 연기라지만 너무 실감나 인기를 얻었다. 실제로 이영범과 노유정은 지인들의 소개로 스키장에서 만나 연애 후 1994년 결혼한 실제 부부였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노유정이 코디미나 드라마에서 큰 활약을 못한 점은 있지만 데뷔 당시 미녀 코미디언으로 알려지긴 했었다.
하지만 자녀 출산 등의 이유로 이렇다 할 방송 경력이 많지는 않다.
이영범은 1961년생으로 1982년 MBC 15기 공채 탤런트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1989년 드라마 '황제를 위하여'를 시작으로 2000년대 초중반까지 탤런트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이후로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긴 했지만 이전의 인기만은 못해 점점 대중들에게 잊혀져 간 탤런트이다.
4년간의 별거 후 이혼, 왜?
연예계 대표 잉꼬 부부로 알려졌지만 노유정의 말을 들어보면 결혼 후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고 한다.
특히 첫째를 출산했을 무렵 이영범이 외도를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본격적인 불행이 시작되었는데 외도를 한 상대녀 역시 배우라고 한다. 누구인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때 배우 김혜수가 외도녀였다는 찌라시가 돌기도 했었다. 하지만 노유정이 인터뷰에서 밝힌 외도녀는 "당시에는 미혼이었지만 지금은 결혼해 유부녀가 됐다. 지금도 당당하고 인기를 누리고 살고 있다. 너무 화가 난다."라고 했기에 해프닝으로 흘러갔다.
사실 이영범도 제법 인지도가 있는 배우였지만 당시 김혜수는 톱스타 반열에 있었기에 굳이 이영범과 썸을 탈 이유가 없어보이긴 하다.
외도도 이혼에 결정적 이유가 됐지만 생활 자체로도 이미 파탄의 길로 흐르고 있었음을 밝혔다. 이영범이 당시 사기 등을 당해 심적으로 괴로워했고 주식 등에도 손을 대는 바람에 금전적인 상황도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이영범이 돈을 좀 마련해보라는 요구를 자주했고 방송활동도 뜸했고 주부로 살던 노유정이 돈을 마련할 길은 없었는데 이때문에 서로 싸우는 날이 많았고 결국 감정의 골이 생겼다고 한다.
또한 심적으로 괴로워하던 이영범이 "당분간 일을 좀 쉬겠다."라고 해 그러라고 허락을 한 후, 어쩔 수 없이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노유정. 당분간만 쉬겠다던 남편이 10년 정도 일을 안해 경제적 어려움은 더욱 컸다고 했다.
결국 별거에 들어갔고 노유정이 이혼을 요구하자 4년 후 이영범이 두 가지의 조건을 제시하며 이혼을 하게 됐다고 한다.
하나는 아이들의 성을 바꾸지 않을 것, 또 하나는 자신의 이야기(아마도 이혼의 원인 등에 대한)를 하지 않을 것이었다고 한다. 이에 노유정은 당장 이혼이 절실했기에 그 조건에 동의를 했었다고 한다.
극심했던 생활고에도 자녀들 뒷바라지를 위해 수산 시장에서 일을 했던 과거
아무리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고는 해도 연예인의 삶을 살았던 그녀였다. 더불어 방송에도 출연을 했었기에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적지는 않았다. 이혼도 힘든 판국에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그녀에게 당시는 굉장히 막막했을 듯 하다.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어도 수근거리는 것이 우리네 일상인데 그래도 방송에서 얼굴을 봤던 연예인이 수산시장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입방아에 오르기 딱 좋은 케이스였던 것.
"방송일도 없었고 당장 생계가 막막했지만 어렵다고 해서 자녀들이 학업을 포기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라고 말한 노유정은 생계를 위해 창피함을 뒤로 하고 시장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별의 별 소문이 많았고 노유정도 상인들과 교류를 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노유정은 상인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잘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지인의 도움으로 고깃집에서 대리 사장을 하기도 했다는 노유정.
해당 고깃집은 신사에 위치한 김일도 고깃집이라 하는데 실제로 가 본 적은 없지만 블로그를 살펴보면 굉장히 친절하고 맛도 좋은 맛집이라는 평이 자자했다. 노유정은 "24시간 운영되는 집이라 하루 17시간씩 열심히 일했다."라고 밝히면서 "하지만 점점 건강이 나빠져 결국 2년 반만에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라며 고깃집 일을 관둔 이유를 설명했다.
현재는 강남에 이사를 해 아들과 함께 살고 있고 딸은 현재 유학 중으로 스스로 파트타임을 해 학비와 차를 산 효녀하고 한다. 강남으로 이사한 것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지인이 쇼핑몰 사업을 같이 해보자고 해 차비를 아낄 겸 무리를 해서 집을 얹었는데 돌연 지인이 사업을 못하겠다고 통보해 와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세가 좀 비싸겠나...-_-a
| 힘들었던 인생의 굴곡, 이제는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이혼을 하고 생활고를 겪었다고 해서 인생이 불우하고 불행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곁에서 보는 시선으로는 불행한 삶이라 할 수 있지만 노유정 개인으로서는 아닐 수도 있기 때문.
하지만 삶이 평탄했던 것만은 아님이 분명하다. 여자로서 남편이 외도를 한 것도 수치스럽고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고 이혼 후 들려오는 루머들, 생활고, 열심히 해도 나아지지 않는 금전적 환경 등은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고충이다.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히 딸과 아들을 모두 훌륭히 키워 낸 그녀는 정말 이 시대의 어머니이고 슈퍼우먼이라 부를 만 하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강하듯 그녀도 강했다.
쓸데없는 지출을 좀 줄이고 일에 전념하고자 무리해서 이사를 했지만 사업이 백지화되면서 또 한번 상처를 받았다는 노유정, 하지만 앞으로는 하시는 일 잘 되기실 바라고 건강도 챙겼으면 한다.
노유정씨 사연을 보고 있자니 어머니 생각이 나는 건...아마 힘든 삶을 살았다는 공통점 때문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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