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이 집에 온 지 2개월이 지났다.
오자마자 탈피를 하고 잘 먹고 잘 돌아다니던 녀석이다. 종종 밥 달라고 수조 유리면에 붙어서 집게발을 활짝 벌리고 애교를 부리던 1521이었다.
지난 주. 자고 일어나니 녀석이 수조에 안 보였다.
" 어디갔지? "하고 어리둥절해 있는데 마루 바닥에서 슬금 슬금 다가오던 녀석이었다.
얼른 수조로 넣어주니 탈출을 반성하는 듯 한동안은 또 수조 위로 기어오르지 않았다. 수조 높이도 높이지만 수조를 올려둔 선반 역시 바닥에서 높이가 상당해 부러진 곳이 없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이번 주에는 출근할 때 늘 커버를 올려놓고 나갔다. 퇴근 후 잠깐 내려놓다가 잘 때 또 커버를 올려두었다.
자는 동안 나올지도 모르니까.
뜻밖의 외박, 사라진 가재
어제 형네 집에 가서 모처럼 형과 술 한잔을 하고 자고 왔다.
1521이 좀 걱정은 됐지만 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지난 주에 그 고생을 했을테니 또 나오진 않겠지..."라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말 못하는 생물이라도 자기도 생존에 대한 생각은 있을테니.
집에 오자마자 수조를 살폈다. 가재가 안 보였다.
쇼파 밑, 가구 밑 등을 샅샅히 살폈다. 발코니도 가보고 커튼 뒤도 열어보았다. 안 보였다.
아무리 볼케이노 가재가 고가의 가재가 아니더라도 2개월간 키운 정이 있는데 걱정이 됐다. 밖에서 오래 못 버틸텐데...
그나마 여름이 아니라 더 생존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1시간을 찾다 포기했다.
가재 찾자고 온 가구를 다 끄집어 볼 수도 없으니 말이다.
| PM 20 : 15분, 발코니 매트에 매달린 채 죽어있던 녀석을 발견하다
주위가 어두워졌으니 혹시 나타났을까 싶어 거실로 나갔다. 역시 수조 근처에는 없다.
방으로 들어오려다 문득 발코니 쪽을 바라보니 무언가 횐 물체가 보였다. 혹시나 싶어 가보니 발코니 매트 벽면에 매달린 녀석이 보였다. 아까 낮에는 없었던...그 곳이었다. 아마 발코니 어딘가 구석 틈에 있다가 간 모양이다.
혹시 살았을까 싶어 만져보니 미동도 하지 않는다.
조금만 더 빨리 나타났더라면....
다음에는 수조에 커버를 꼭 닫고 키워야겠다. 처음 503호는 수온 조절 실패로 3주만에 용궁으로 보내고 이번 1521은 탈출을 막지 못해 보내고....가재 키우기가 쉽다고 하더니 은근 어렵다.
그래도 살아있는 생물이 죽었으니 마음은 씁쓸하다. 더 오래 오래 같이 지내고 싶었는데....
안녕. 1521....잘 돌봐주지 못해 미안했다.
'슬기로운 물질 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 이젠 뭔가 깨달은 가재 '블루이' (0) | 2023.05.28 |
---|---|
#13. 요즘 왜 이러지. (0) | 2023.04.25 |
#11. 볼케이노 가재 사육 기록, 초보의 경험담 (0) | 2022.08.21 |
#10. 물질의 경사 (0) | 2022.08.14 |
#9. 새우 탈피 그리고 죽은 새우를 먹는. (0) | 2022.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