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더 무비

서울의 봄 | 12.12 쿠데타, 보면 볼수록 킹 받는다.

1979년 12월 12일 하나회가 국가를 장악한 사건을 그린 영화 ' 서울의 봄 '

 

 

 

 

개봉 첫 날부터 평점 9.6점을 받으며 화려하게 막을 올린 영화 ' 서울의 봄 '.

영화의 배경은 1979년 10월 ~ 12월 12일까지의 서울을 그리고 있다. 영화의 제목이 ' 서울의 봄 '인 이유는 1979년 10월 26일부터 1980년 5월 17일까지가 바로 대한민국의 암울했던 민주화 운동 시기였으며 오랜 군사정권으로부터 해방되는 대한민국을 염원하는 뜻에서 서울의 봄이라 불렸던 까닭이다.

이미 대한민국 근대사에서 벌어졌던 실제 이야기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서울의 봄이 오지 못했음을 잘 알 것이다.

 

2005년 MBC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 제 5공화국 >을 통해 이미 당시에 대해 다들 결말을 알고 있겠지만 꼭 한번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우리의 지난 역사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음을 시사해주는 영화라는 걸 말하고 싶다.

영화 ' 서울의 봄 '은 실제 당시 군부의 이름을 모두 가상의 이름으로 대체해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전두환을 전두광, 노태우를 노태건으로 부른다.

 

전두광 역에는 배우 황정민이, 노태건 역에는 박해준, 그리고 참모총장 정상호 역에는 이성민, 이태신 장군 역에는 정우성이 각각 배역을 맡아 열연했다. 그 외에도 내놓으라 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배우 라인업만으로도 엄청난 스펙을 자랑한다고 할 수 있다. 그 밖에도 특별출연으로 정만식, 정해인, 이준혁 등이 있다.

 

 

 

 

육사로 똘똘 뭉친 신군부 사조직 하나회

 

하나회는 육사 출신으로 11기 전두환, 노태우를 필두로 조직 된 사조직이다. 처음에는 친목회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 박정희 대통령를 지지하는 강성 조직으로 군부의 신흥세력으로 급부상한다. 실제로 당시 하나회 출신 대령들이 줄줄이 장성으로 진급, 군 전체를 독점해 나갔다고 한다. 11기 중 가장 성적이 나쁜 편에 속해있던 전두환이 군부의 실세로 떠오르게 된 원동력도 바로 하나회 덕분이라고 한다.

전두환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안기부장에게 저격당하자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이 군 내부의 통신망을 감청해 사실상 실권을 장악했고 노태우는 이를 도왔다.

엄밀히 말해 이들은 반란군이었지만 휘하 장교들을 모두 포섭, 진압군의 반격을 무산시키면서 또 한번의 군사정권 시대를 열었다.

 

 

 

1979년 12월 14일 쿠데타 성공 후 찍은 하나회 기념사진, 이들 모두가 반란죄에 해당된다.

 

 

 

위의 사진은 당시 하나회의 기념촬영이지만 모두 하나회 회원들은 아니다. 이 중 사태를 전혀 모르는 채 오직 계급에 의해 전두환의 명령을 따른 당시 보안사 참모장 우국일 준장 ( 보안사 참모장이란 직급 때문에 사진촬영에 합류), 김기택 준장은 반란군의 서울 진입을 방조해 반란군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당시 장태완 사령관에게 하나회 명단을 적어 쪽지로 건네 준 점등을 볼 때는 진압군에 속하기도 했다. 김기택 준장은 군사 정권 수훈자 명단에서도 배제됐으며 좌천 당했다고 한다.

 

 

 

 

 

 

 

12.12 군사 쿠데타가 성공했던 이유, 전두환의 리더쉽

 

당시 전두환은 비록 육사 성적은 좋지 못했지만 호탕한 성격과 싸움을 굉장히 잘하는 호전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또한 자기 사람이라면 끝까지 잘 챙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국가전복죄로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하고 사형을 선고받았음에도 끝내 감형, 사면 된 배경도 모두 그의 휘하들이 입김이 컸다고 생각한다.

사실 12.12 쿠데타 당시 반란군을 진압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실패한 이유는 전두환의 전략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안일하게 생각한 진압군 장성들의 무능이 절대적이었다.

 

12.12 쿠데타의 절대적인 피해자를 꼽으라면 아마도 정승화 참모총장, 그리고 끝까지 반란군에 맞서려건 장태완 수경사사령관일 것이다. 역사에 있어 만약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만약 정승화 참모총장이 당시 정치권과 협조를 잘했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또한 커져가는 하나회를 잘만 견제했더라면 전두환과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역사는 없었을 수도 있다. 물론 당시 정황상 정승화 참모총장이 무능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보면 볼수록 킹 받는 영화 ' 서울의 봄 '

 

이미 그 결말을 알기에 ' 서울의 봄 '을 볼까 말까 고민을 했다.

지나간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는 픽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당사자들 대부분이 세상을 떠났다.

이미 아는 사실임에도 영화를 보는 내내 속에서 욱하는 분노가 치밀었다.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건 없지만 당시 하나회가 쿠데타에 실패했더라면 광주 민주화 운동의 비극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이지만 지금이라도 당시 가담했던 모든 당사자들의 예우를 박탈하고 그 책임을 물렸으면 좋겠다. 그래야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이 땅에 없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