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이슈

익산 금괴 매장설, "터무니없다."면서도 은근 탐지 고려 중?

찬란했지만 허약했던 동방의 작은 국가 조선

 

 

조선왕조만 해도 미국의 역사보다 길다. 흔히들 대한민국의 역사를 일컫어 반 만년의 역사라고들 한다.

고조선 건국을 뿌리로 하여 대한민국의 역사는 시작된다. 이후 잠시 나라의 틀이 사라지기도 했지만 다시금 고구려,백제,신라로 통하는 삼국시대를 시작으로 유구한 역사가 이어졌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역사가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면만 있던 건 아니다. 삼국시대도 그러했고 고려, 조선 시대도 그러했다.

지속적으로 중국 대륙의 침략과 통제, 일본의 침략으로 끊임없이 수탈당하고 조공을 바쳤었다.

그럼에도 문화유산을 지켜온 것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다.

 

 

 

약 36년간의 일제강점기, 남아있는 미스터리도 많다

 

다른 동남아 국가나 외국처럼 수 백년을 강점당한 건 아니지만 우리도 36년간의 강제 점령을 당했던 식민지배 경험이 있다. 일본은 이 기간 동안 많은 것을 빼앗아갔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많은 괴담을 만들기도 했다.

일제의 금괴 매장설은 비단 오늘의 익산 뿐이 아니다. 전국에 근거없이 떠도는 매장설 등이 많다.

그 중 가장 유명했던 것이 바로 "청계천 매장설"이었다.

하지만 청계천 복개공사 때 이가 발견되지 않았을 리는 만무하다.

 

 

익산에 위치한 일본인 농장 사무실 모습, 현재 진입을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익산시 금괴 매장설은 상당히 신빙성을 뒷받침하고 있는 징조들이 있다.

현재 금괴가 매장됐다는 곳은 산시 주현동 105-27번지로 일제시대 당시 일본인 농장주 오하시가 운영하던 사무실이다.

이 곳은 당시 호남 최대의 쌀 재배지로 유명했고 이때 오하시는 일본에 자신의 이름을 띈 은행도 소유할만큼 엄청난 부를 축적한 인물이라고 한다. 익산 뿐 아니라 김제에도 땅을 매입했었다고 전해진다.

 

그런 부자였던만큼 그가 일본 패망 후 서둘러 귀국을 준비하면서 수 많은 재산을 모두 일본으로 가져가진 못했을 것이다. 또한 금괴 매장설을 제기한 이는 오하시의 손자이며 그는 탈북민 A를 통해 금괴 탐지 작업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민 A씨는 단순한 탈북민이 아니고 2012년 대구 동화사 금괴 매장 사건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는 "북에 있을 당시 남한출신의 양아버지로부터 한국전쟁 때 대구 동화사 뒤뜰에 금을 묻어두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던 인물로 동화사는 현재 보물 제1563호의 문화재이다.

문화재청은 전문가의 입회하에 그의 발굴 허가를 조건부로 내주었는데 동화사와 A씨간의 소유권 분쟁으로 무마되면서 일단락 된 적이 있다고 한다. 마침 이 당시 서울은행 소유의 금괴가 한국전쟁 시기에 사라졌다는 말까지 있어 A씨는 발굴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동화사 뒤뜰의 금괴가 실존한다고 해도 이는 원칙적으로 소유주인 한국은행의 것이 되고 일부를 나눈다고 해도 토지주격인 동화사의 몫이 상당할 것이다. 따라서 정작 A씨가 갖게 되는 양은 극히 미미하다는 것이다.

그런 A씨가 해당 토지를 매입 또는 임대하는 방안을 고려했었다는 걸 보면 익산시 금괴 매장설은 아주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이 금괴가 실제 발견된다면 소유권은 어떻게 될까?

일단 실제 조부님의 것이라 주장하는 일본인의 소유권 주장은 씨알도 안 먹힐 것이다. 강점기 당시 일본인이 축재한 재산에 대해서는 국고로 환수가 원칙이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토지주인 익산시의 일부 지분이 인정되고 발견자인 A씨의 지분도 인정된다는 것이 현재 전문가들의 뜻이다.

현재 가치로 약 1,400억원 규모라고 하니 700억씩 나눠 가질 수 있다.

 

 

금괴 2톤은 단순히 금덩어리가 아닌 당시 조선인들의 피와 땀이기에 소중하다

 

 

| 익산시, 터무니없다고 일축하면서도 탐지 고려중.

 

익산시는 일단 금괴 매장설에 대해서는 "말도 안된다."라고 부인하고 있다. 아무리 오하시가 당시 엄청난 부자였다고 해도 짧은 시간 내에 금괴를 그렇게 확보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농장 사무실은 일제 때 지어진 것이 맞지만 그 외 부속건물은 1948년 건축되었으며 당시 금괴를 매장했다는 기록이나 이야기가 단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주 근거없는 이야기로 보기에는 석연찮다. 일단 오하시의 손자라고 주장한 사람이 진짜 그의 손자가 맞다면 충분히 조부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들었을 수 있고 그가 굳이 탈북민을 통해 금괴 매장 사실을 확인하려고 시도하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야 해당 건물이 국가등록문화재지만 당시에는 그저 많은 일본식 건물 중 한 채였을 뿐이다.

 

금괴의 양만 놓고 본다면 2톤 정도이니 적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2톤이 갖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가히 작다고 할 수는 없다. 당시 수탈당한 조선인들의 피와 땀이 만든 금괴가 아닌가.

또한 자료가 없다는 것은 우리의 보관 능력 부재이기도 하지만 일제 청산이 그만큼 안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 금괴가 정말 실존한다면...

저 금괴를 발견한 사람은 얼마나 행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