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건축물들을 보면 그 기법과 아름다움에 감탄이 절로 나오기 마련이다.
궁궐이나 옛 조선시대의 흔적들을 볼 때마다 나는 "과연 옛날 사람들은 이 곳을 지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하는 생각을 한번씩 해보곤 한다.
물론 조선 시대도 사람이 살던 시대이다 보니 각종 사고, 요즘 시대에서 바라본다면 "그때에도 그런 일이?"라고 생각할 정도의 일들도 더러 있었지만 그래도 조선 시대 때는 임금을 향한 충, 부모를 위한 효를 최고로 알고 살던 때이니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군주를 잘못 모셨다는 죄책감에 목숨도 서슴없이 내던지던 시대.
지금에서 본다면 미친 생각같겠지만 과거 우리의 선조들은 그것이 사람의 도리였고 신하 된 도리였을 것이니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묘는 사극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종종 나오는 장소이다.
역대 임금님들의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등록 된 곳이라고 한다. 정확히 표현한다면 정전이라 불러야 한다는 이 곳에서 이안제라는 행사가 거행됐다고 한다.
우리에겐 낯선 '이안제', 고종 이후 151년만의 일이라고 한다
1870년 1월 고종 황제는 즉위 7년만에 역대 선왕들의 신위를 옮긴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를 이안이라 하는데 이 의례를 통칭 이안제라고 한다. 그리고 두달 여 뒤인 3월 다시 원래의 자리로 옮기는 환안을 행했다고 전해진다.
6월 5일 이안제를 시행한 것은 종묘 정전에 심각한 보수 공사가 불가피해 이루어진 것이라 정부는 발표했다.
종묘 정전의 보수공사는 2020년 시작됐으며 완료일정은 2022년이라 한다.
정부는 이번 이안제를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와 방역 지침에 따라 일반에는 비공개로 진행하며 대신 행사의 모든 장면을 영상으로 기록, 대중에게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최대한 고증을 통해 내년 환안제에서는 일반에 행사를 공개 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환안제를 보고 싶은 분들은 내년까지 기다리셔야 할 듯 하다.
본 의례에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은 참석하지 않은 듯 하며 19명의 헌관과 집례를 맡은 49명의 집사, 실외제관 8명 등 종모제례보존회 관계자들을 포함한 총 98명의 관계자만 참석했다고 한다.
의례는 5일 오전 10시를 시작으로 종묘에서 종묘 외대문에 설치 된 임시 이안소까지 도보로 이동, 그 곳에서 무진동 차량을 이용해 창덕궁 돈화문으로 이동한 후 다시 도로보 구선원전으로 가 봉안하는 순서로 진행 되었다.
선원전은 원래 효종 당시 춘위전에서 사용되던 건물을 경화당으로 옮겨 사용하였는데 숙종 대에 이르러 선원전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한다. 선원전은 그 용도가 종묘와 함께 선왕들의 제사를 지내고 기리기 위함이어서 웅장하거나 화려하게 짓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일제가 창덕궁 후미진 곳에 선원전을 새롭게 지으면서 이 곳을 구선원전이라 불렀다고 한다. 선원전에는 역대 모든 임금님의 초상화를 모시진 않고 숙종을 포함 헌종 임금까지의 어진을 모셨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한국전쟁 당시 어진을 부산으로 옮겼으나 화재로 인해 모두 소실됐다고 한다.
일제에 의해 선원전이 새로이 건축되면서 제 기능을 상실한 채 비어있었으나 2005년 부속건물을 고증을 통해 복원하면서 다시금 원래의 역할로 돌아왔다고 한다.
| 남아있는 어진(임금의 초상화)는 얼마나 될까, 그것만이라도 후대에 잘 보존하여 남겨주어야
일단 삼국 시대의 어진은 신라 경순왕의 어진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고려 시대 어진은 그래도 잘 보존되어 왔으나 세종 시대에 이르러 대부분 불사르거나 땅에 묻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나마 전해지는 것은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어진만이 있으며 고려 시대 왕들의 어진 18점은 "마진의 정갈한 땅에 묻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마진은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 일대를 의미한다. 따라서 언젠가는 발견되지 않을까 한다. 설마 그래도 그냥 묻진 않았을테니 말이다. 함이나 어떤 상자에 넣고 파묻었겠지.
조선 시대의 어진은 태조, 원종,영조, 순조, 문조, 철종, 고종, 순종 순으로 어진만이 전해지고 있지만 그나마도 태조 어진을 제외하면 대부분 절반 이상이 불에 훼손 된 상태여서 실질적인 어진으로 보기도 애매하다.
고종과 순종의 경우에는 잘 보존되어 있다.
선조는 특이하게도 어진 그리기를 거부한 임금인데 1974년 조선 중기의 문신을 지낸 윤탁연의 가문에서 보관 중인 선조의 어진이 공개되기도 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선조의 어진은 임진왜란 초기에 그려진 것으로 윤탁연 역시 당시 누군가가 그린 군복 차림을 한 선조의 어진을 입수, 집안 대대로 소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보존되어 있는 어진들은 모두 상상을 가미해 가공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보관은 진짜 일본이 잘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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