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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슈

대한제국 고종 황제 국새 4종, 보물 지정된다.

짧은 역사를 지닌 대한제국, 사실상 조선이다.

 

 

대한민국 이전 한반도를 통치했던 국가는 조선이다.

1392년 태조 이성계가 국호를 조선으로 칭하고 나라를 세운 후 1910년까지 약 518년의 역사를 간직했다.

찬란했지만 어두운 역사도 많이 간직한 조선. 끊임없는 왜란,호란과 함께 강점기의 불우한 역사를 거치기도 했다.

태조부터 순종까지 약 27명의 임금이 통치를 했지만 사실상 고종 황제를 마지막 군주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27명의 임금이 사용한 국새 중 도난당한 것으로 판명난 국새는 모두 29종.

 '조선왕보'(朝鮮王寶)와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 '위정이덕'(爲政以德) 등 조선시대 국새 10점을 비롯해 '대조선국보'(大朝鮮國寶)와 '명덕지보'(命德之寶) 등 개화기 국새 11점, '대한국새'와 '황제지새'(皇帝之璽) 등 대한제국 국새 8점 등이 그것이다. 사실상 국새의 대부분이 도난, 분실 된 것이다.

물론 그 주요 유출처는 미국과 일본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강점기에 일제가 약탈해 간 것을 미군정이 회수해 가져갔거나 한국전쟁 당시 유출 된 것이라는 것이다.

 

국새는 물론 어보 47점도 도난당했다고 문화재청은 보고 있다. 국새가 평상시 임금이 명령을 내리기 위해 사용 된 도장이라면 어보는 임금이 죽은 뒤 종묘에 안치하기 위해 만든 의례용 도장을 말한다.

국새와 어보는 그 목적과 용도를 떠나 오로지 임금을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희소성과 조형적인 면에서도 뛰어난 문화 유물이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문화재청은 국보로 지정하기 보다는 보물로 지정하고 있다.

 

 

고종이 사용하던 국새 4종이 교포의 기증으로 국내로 돌아왔다.

 

 

고종 당시에만 사용됐던 국새, 하지만 보물적 가치가 높다

 

1882년 제작 된 대군주보를 제외하면 나머지 3종은 모두 1890년대에 제작됐다. 고위직의 임명, 임금의 명령, 군대의 명령권 등에 사용되던 이 국새들은 고종 대에만 사용됐던 것들이다. 제작시기만 보면 근대기로 역사가 짧지만 대부분의 국새가 유출, 도난 된 상황에서 고종 당시의 국새는 매우 가치가 높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오랜 세도정치와 무너진 국력으로 후대에 이르러 무능해 보인 왕조의 말이라 하더라도 이들 국새의 제작기법을 통해 앞선 임금들의 국새 제작 기법을 유추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 보관 된 국새는 4점은 미국이 반환해준 것이고 나머지는 재미교포에게 사들이거나 기증받은 것들이라 한다. 문화재청이 국새와 어보를 도난 문화재로 등록을 하고 이를 명시하는 이유는 바로 "원래 소장처를 공고히 하여 추후에 발견될 경우 반환받기 위함"의 목적이다.

 

말로만 떠들던 평화가 가져 온 결과물은 너무나 큰 상처와 많은 피해였다.

하루라도 빨리 만주벌판과 우리 선조들의 역사, 그리고 독도는 물론 유출 된 문화재들이 고국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그래야 삐뚤어진 역사를 바로잡고 무식한 국뽕이 사라질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