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덧 76주년 광복절이 되었다.
이미 반 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일제의 잔재와 해결되지 않은 강제 징용, 위안부, 친일파 청산 작업등이 남아있다. 일찍이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와 잔재들을 청산한, 그리고 현재까지도 매국노와 그 전범자들이 색출되면 나이를 막론하고 처벌하는 유럽과는 사뭇 다르다.
아마도 친일파 후손들이 대부분의 지도층을 장악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작업이기도 할 것 같다.
광복 76주년, 봉오동 전투 100년을 기념해 김좌진 장군과 더불어 민족 영웅으로 추앙받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봉환해 오기로 결정됐다. 카자흐스탄 정부도 이에 동의하며 자국 내에 있는 장군의 묘를 지속적으로 유지 관리하겠다는 연락을 취해왔다고 한다.
이번 유해 봉환을 위해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 우원식 의원, 황기철 국가보훈처장, 배우 조진웅이 대통령 특사단의 자격으로 카자흐스탄으로 출국했다. 조진웅은 민간 대표자격이며 영화 <대장 김창수>에서 젊은 날의 故김구 선생님을 연기했었고 또 영화 <암살>에서 무장독립투사 '속사포'를 연기한 바 있다.
" 외할아버지께서도 꼭 고국에 묻히길 바라셨을 겁니다. " 홍범도 장군의 외손녀 유해 봉환에 감사 인사
일제 시대 의병을 조직해 여러 차례 승전보를 울렸고 곧이어 봉오동,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 부대를 격파한 의병장.
홍범도 장군의 이야기이다. 1868에 태어나 1943년 사망했다.
위대한 의병장이자 독립군이었지만 장군의 삶은 노년까지 그리 순탄하진 않았다고 한다. 홍경래의 난으로 유명한 홍경래와 가까운 친척지간이어서 증조부는 평양의 외딴 오지에 숨어 살았다고 한다.
청산리 전투는 한때 김좌진 장군의 업적으로만 기록되고 알려졌었지만 이후 홍범도 장군의 업적 역시 작지 않음이 드러나면서 새로운 독립운동의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홍범도 장군은 독립투쟁을 하는 이유에 대해 바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 우리가 싸우는 이유? 바로 저 아이들을 위해서 아니겠나. "
나라 잃은 슬픔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홍범도 장군은 1937년 스탈린 정부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다른 조선인 동포들과 이주하였고 후에는 소련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으며 농장관리, 경비일을 하며 노년을 보냈다고 한다.
홍범도 장군은 한때 소련의 레닌에게 선물을 받았다는 이유로 그의 업적(공산당과 가까이 지냈다는 이유)이 가려지기도 했으나 결국 나라를 위해 싸운 공로를 인정받아 1962년 한국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받았다.
현재 러시아에 거주 중인 홍범도 장군의 외손녀는 80세의 나이에도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고 한다.
"외할아버지께서도 기뻐하실 것"이라고 전한 그녀는 홍범도 장군의 사진, 사용했던 유품을 공개하며 죽을 때까지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을 것이라 밝히기도 했다.
| 광복절에만 기리고 기억하는 독립운동, 친일은 반드시 청산해야 할 과제
우스갯 소리로 "나라를 위해 싸우면 3대가 망하고 나라를 팔아먹으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이 말은 잘못됐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나라를 위해 싸우면 대대로 망하고 나라를 팔아 먹으면 대대로 흥한다는 게 현실이라고 말한다.
선조가 독립 운동을 했지만 입증할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지금도 밝혀지지 않고 인정받지 못한 수 많은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이 있다고 한다. 물론 입증을 하지 못하면 훈장과 그 예우를 해줄 수 없기는 하다.
다만 그만큼 우리나라가 아직도 친일을 청산하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설령 독립운동의 공이 인정된다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다. 훈장과 표창장이 전부이니 말이다.
일제에게 빼앗긴 재산과 토지는 반환되지 않는다.
반면 친일의 후손들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수 많은 토지를 거의 대부분 지킬 수 있었다. 국가는 그들을 지금의 법규로 처벌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대지만 정말 그것은 핑계이다.
누차 말하지만 일제 시대는 비록 외교권은 빼앗겼지만 엄연히 조선이었다.
따라서 친일 행위를 한 자들 모두 반역이며 역모에 해당되는 중죄인들이다. 조선의 법대로라면 친인척들은 모두 참형이고 촌수에 따라 노예로 강등되는 행위를 한 것이다.
친일은 지금의 법이 아닌 당시 조선의 법으로 다스려야 맞는 일이다. 참수를 할 수는 없겠지만.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15일 저녁 귀국되어 16일~17일 이틀간 추모식을 가진 뒤 8월 18일 대전현충원에 안치 될 것이라고 한다. 다시한번 나라를 위해 일제와 맞서 싸운 홍범도 장군의 명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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