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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슈

경술국치 ( 庚戌國恥 ). 잊지 말아야 할 오늘

1910년 8월 29일. 우리는 나라를 잃었다.

 

 

잊고 싶지만 잊으면 안되는 날이 있다. 경술국치일인 오늘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의 조상님들은 109년 전 1910년 8월 29일 최종적으로 일제에게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다.

경술년에 일어난 국가의 치욕이라 해서 '경술국치'(庚戌國恥)라고 부른다.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은 일제에게 무수한 탄압과 식민지배적 고통을 받아야만 했다.

 

뜻있는 분들은 독립 운동을 하겠다며 만주나 도성 곳곳에 몸을 숨기고 일제에 맞섰고 이번 기회에 출세를 해보자는 무리들은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민족을 짓밟았다.

 

 

매국노의 대명사 '이완용', 친일인명사전 / 이미지 : 민족문화연구소

 

 

| 100년이 넘도록 친일청산을 못한 국가. "친일인명사전"은 무의미한 일이다.

 

1945년 8월 해방을 맞이했지만 우리는 잘 알다시피 미군정과 당시 리승만의 무지로 인해 친일파 청산에 실패했다. 물론 당시 사회 정세상 친일을 청산하기 곤란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2,3,4,공화국을 거치면서도 친일청산을 이루지 못했다.

이미 기득권 세력이 된 친일 후손들이 국가의 전반을 장악했으니 말이다. 오늘 날 <친일인명사전>이라는 것을 매년 편찬해 친일파들을 알린다고는 하지만 사실 이는 매우 무의미한 일이다.

백날 사전 편찬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교훈? 망신?

 

제대로 된 처벌을 내리지 못하면 아무런 교훈이 생길 수 없다. 당장 외세가 침략해 나라가 위기에 빠지면 누가 나서서 나라를 구할까? 그때도 독립운동가 후손 분들이? 택도 없다고 생각한다. 재산 팔아 나라 지켰는데 돌아오는 건 훈장쪼가리에 문서 딸랑 한 장. 차라리 나라 팔아먹는데 일조를 하면 천년만년 후대가 편안히 살 것인데 누가 나라를 지키려고 할까.

그렇다면 문민정부, 그리고 오늘 날까지도 왜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그것을 "의지 부족"이라고 본다. 청산해야 할 가치도 모르고 의미도 모르기 때문에 안하는 것이다.

혹자들은 친일을 청산하면 국가가 흔들릴 수 있다고 하는데, 왜 그런 발상이 나오는지 의문이다. 친일 후손이 대학교 총장이라 하자. 총장 바꾼다고 대학이 무너지지 않는다. 후손이 언론사 사장이라 하자. 사장 바꾼다고 언론사 무너지지 않는다.

국회의원? 4성 장군? 바꾼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것이다.

 

 

이범진 선생. 대한제국의 법무대신이자 외교관이었다.

 

 

철종 3년에 태어나 1911년 사망한 대한제국의 법무대신이자 주미,주러시아 공사 등 외교관을 지낸 이범진 선생.

이완용이 미쳐날뛰자 1897년 자원하여 주미공사로 파견나가 외교에 힘을 쏟은 충신이라고 한다. 일제가 나라를 빼앗고 각국의 대한제국공사들을 소환하라고 하자 이에 불응, 러시아로 건너가 국권회복에 힘을 쏟기도 했다.

1907년 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등 고종 황제가 밀사로 파견한 이들과 만나 황제의 친서를 보완하고 아들을 시켜 그들의 통역을 맡도록 지원하기도 했다.

 

 

 

| 북한, "경술국치. 잊지 않고 반드시 보복할 것" 천명

 

북한이 차라리 대한민국 정부보다는 낫다. 북한 매체들은 "과거의 죄악을 반드시 받아내고 말 것"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의 지난 만행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요구하는 한편, 언젠가는 그 원한을 반드시 돌려줄 것이라 천명했다.

매체들은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전대미문의 반인륜 죄악으로 사과를 물론 천배백배로 보상해도 부족할 판에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 우기고 도적이 매를 드는 꼴이니 이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더불어 한일합방은 물론 당시 무력과 음모로 작성 된 모든 조약과 문서는 사기이며 이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리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도 친일은 이제라도 좀 청산하자. 당시의 국법으로 처리해야 하는데 왜 자꾸 지금의 헌법으로 당시의 일을 논하는지 모르겠다. 나랏일을 한다는 분들이 이리도 생각이 없으니 외교인들 잘 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