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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정보

박나래 - 래퍼 원슈타인 학폭 피해 언급, 학교 폭력은 범죄

개그우먼 박나래와 래퍼 원슈타인이 방송에서 과거 학폭의 피해자였음을 공개했다.

 

 

개그우먼 박나래와 래퍼 원슈타인이 과거 학창시절 학교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방송에서 언급했다.

언뜻 보기엔 서로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았을, 그래서 학창시절에도 4차원이라는 평가는 들었어도 별 무리없이 보냈을 것 같았는데 학교 폭력을 당했었다니 다소 충격적이긴 하다.

 

특히 래퍼 원슈타인은 학교폭력을 당하는 친구를 외면했던 기억부터 본인 역시 피해를 입은 상처까지 더해져 분노를 표출할 때 자신을 자학하는 자해성을 가지고 있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원슈타인은 그런 방식에 대해 딱히 고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까지 밝혀 더 놀라게 했다.

 

학교폭력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과거부터 쭉 이어져 온 어찌보면 학창시절의 한 단상(斷想)일지도 모르겠다.

과거에도 학교폭력에 있어서 교사나 어른들의 만류, 제지, 체벌은 있어왔다. 하지만 대부분 " 서로가 무언가 잘못을 했으니 그런거겠지. " 또는 " 네가 자꾸 당해주니까 더 그런거지. "라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짓지 않고 모두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가해자를 혼내더라도 피해자도 꾸짖는 경우가 많았다.

 

가정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 병신같이 왜 맞고만 있어? ", " 네가 병신처럼 구니까 그렇지. "라며 피해자를 더 나무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학폭에 대해 사회적으로 큰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오은영 박사의 금쪽 상담소 방송 화면

 

 

가학성 분노 표현, 학교 폴력 피해를 당할 경우 많이 갖는.

 

따돌림을 당하거나 학교 폭력에 노출 된 사람의 경우 스스로를 자학하거나 자해하는 성향을 자주 보인다. 개인적으로 볼 때원슈타인이 자신의 주먹이 다칠 정도로 벽을 친다는 것은 일종의 분노 표출 방식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존재한다.

스스로가 약자일 때, 그리고 그런 자신이 싫거나 부끄러울 때 등이다. 자신은 약하지 않고 그러한 학폭에 있어 맞서 싸울 수 있는 자신감이 있지만 정작 그것을 실행하지 못할 때 주로 저런 식의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 난 약하지 않아. " , " 난 강한 사람이다. "라고 표출하고 싶은 욕망이 스스로에게 전달되는 것.

물론 때로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남에게 표출할 수는 없으니 그러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벽을 친다는 건 누군가에 대한 분노이고 그것을 때려부숨으로써 스스로 만족하는 그런 심리 말이다.

 

나도 어렸을 때 학폭을 당한 경험이 있다.

돈도 빼앗겼었고 별 일도 아님에도 맞았던 기억이 있다. 어릴 땐 겁이 많아 누군갈 때려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더 컸을 무렵, 고교 때 그 친구를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 친구와 학교가 달라져 마주하지 않은 시간 동안 나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고 맞으면 때릴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친구를 놀이터로 데려가 싸움을 벌였고 한 대도 안 맞은 건 아니지만 과거에 당했던 만큼 때렸다.

그것도 그 친구의 여자친구 앞에서. 여자친구 앞에서 맞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도 없었을테니.

맞다. 사실 그 친구는 날 못 알아봐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시비를 걸었던 것이다. 이길 자신까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부끄러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청소년기는 매우 중요한 시기,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 구분을 명확히 심어 줄 필요가 있다.

 

 

| 가해자, 피해자는 명확히 인식을 가르쳐줘야 할 의무

 

물론 어린시절의 학폭이 그 순간, 상황에서는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가해한 학생들도 일종의 장난, 그저 유치원 때부터 해오던 괴롭히는 것 뿐, 그것이 범죄행위라고 인식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처벌의 수위를 떠나 가해와 피해에 대한 명확한 경계와 구분선은 청소년들에게 가르쳐줘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피해 학생들이 아무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서 끙끙거리는 것은 바로 그러한 경계를 아무도 가르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맞은 게 무슨 자랑이라고, 병신처럼 맞고 다니는 주제에 등의 폭언과 한번의 잘못으로 큰 상처를 남겨주면 안된다는 잘못 된 청소년 교육관이 학폭을 근절시키지 못하는 요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성장하면서 학폭에 대한 상처를 나름대로 잘 극복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 계속 그 틀에 갇혀 스스로를 불행하게 이끌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건 잘못은 아니지만 스스로에게도 잘못 된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못나서 당한 게 아니라 그때는 어떻게 대처하는 게 올바른 것인지 몰랐던 것 뿐이고 잘못 된 길을 가지 않으려는 마음이 더 강했던 것 뿐이다. 스스로가 못나서는 절대 아니라는 걸 알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