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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의 삶

군번줄.

대한민국 남자라면 대부분 갖고 있을 군번줄.

 

 

대한민국 남자라면 대부분 군대에 입대하게 된다.

나 역시도 군대에 다녀왔다. 합법적으로 가지 않아도 되긴 했지만 나는 자원 입대를 했다

가고 싶었던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가기 싫었던 것도 아니였다. 다들 가니까 나도 가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래보다 일찍 군대에 입대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나는 전우들보다 나이가 2살 정도 어렸다.

당시 IMF로 인해 군대에는 많은 장병들이 입대를 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전우들은 나보다 1살, 대부분 2~3살 형들이었다.

많게는 5세 이상의 형들이었다.

군대는 누구나 똑같이 만들었다. 나이보다는 계급, 군번이 신분을 나타냈기 때문에.

 

그때는 구타가 합법이었고 각종 가혹 행위도 정당화되던 때였기에 군기는 엄했고 기간병, 간부들의 말은 곧 법이었다.

훈련을 마치고 내무실로 돌아왔는데 군번줄이 안 보였다.

아마 훈련 도중 줄이 끊어진 듯 했다. 내 과실은 아니였지만 군인이 군번줄을 분실했다는 건 꽤나 큰 일에 속했고 당시 엄한 군기 속에 나는 어쩔 줄 몰랐다.

 

그때 동기 중 한 명이 줄만 주웠다면 군번이 없는 줄을 내게 건네주었고 나는 군번줄을 착용한 것처럼 위장해 점호를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었다.

결국 며칠을 고민하던 나는 평소 자주 보던 기간병에게 이같은 일을 말했고 기간병은 "훈련병이 고의로 그러진 않았을 거고 그 동안 걱정 많이 했겠네? 내가 곧 구해줄테니까 군번 말해줘."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그 다음 날 날 따로 불러내 군번줄을 하나 건네주었다.

 

 

전쟁이 무서운 게 아니라, 나라를 잃는 게 무서운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기간병은 당시 이등병이었다고 한다.

물론 나보다야 훨씬 군번이 앞선 선임이지만 말이다. 또 하나의 사실은 그 역시도 이등병의 신분으로 군번줄을 새로 만들러 갈 수 없어 자신의 선임에게 부탁했고 새로 만드는 돈은 그 선임이 대신 내주었었다고 한다.

당시엔 그런 것을 몰라 감사하다는 말로 끝냈는데...

 

아마 그도 이제 결혼을 해서 누군가의 부모, 남편이 되어 있을 듯 하다.

혹 어디선가 마주치게 되면 꼭 소주 한잔 같이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