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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대한민국 커밍아웃 1호 연예인이자 연예계 마당발 - 홍석천

사업가이자 방송인 홍석천

 

 

대한민국 1호였다. 그리고 굉장히 놀라웠다.

홍석천은 1990년대 중후반 인기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에서 의상 디자이너 '쁘아송"역을 맡아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강렬한 인상과는 달리 사근사근한 말투, 여성스러운 몸짓까지...연기라고 보기엔 너무나 잘 어울렸던 그였기에 대중들은 농담 반, 진담 반 그의 정체성을 의심했지만 그것이 현실일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1. 방송 도중 커밍아웃 선언, 대한민국 혼란의 도가니에 빠지다.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같은 단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흔히 '게이'라고 불렸는데 지금도 별반 다르진 않겠지만 당시만 해도 게이는 일반 대중들에겐 미친 정신 병자같은 소리였다. 더군다나 TV에 나오는 연예인이 그렇다는 건 더욱 그랬다.

외국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한국 사회에서는 용납이 안되는 말이었다.

 

 

커밍아웃을 결심한 후 그는 방송에서 이를 고백했고 다음 날 언론은 난리가 났다. / 이미지 자료: JTBC

 

 

홍석천이 커밍아웃을 하게 된 결심의 배경에는 당시 알고 지내던 지인 때문이었다고 한다. 홍석천이 시트콤 출연 등으로 인지도가 올랐을 무렵 주점을 오픈한 지인은 홍석천에게 가게에 한번 와달라고 부탁을 했고 홍석천은 안면이 있는 지인인지라 예의상 가게를 방문했다. 그리고 연달아 3회에 걸쳐 팬 사인회를 갖게 된 상황에서 홍석천은 부담을 느꼈고 더 이상은 무리라고 하자 지인은 "너 호모지? 언론에 밝힌다."라며 그를 협박했다고.

 

홍석천은 자신의 성 정체성이 자신을 협박할 수 있게 만드는 약점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고 이를 공개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방송 도중 평소 친하게 지내던 김현석이 "남자가 좋아요? 여자가 좋아요?"라는 기습 질문에 홍석천은 커밍아웃을 선언하게 됐다. 물론 그 방송 부분은 편집당했고 다음 날부터 홍석천은 TV와 언론의 중심에 서게 됐다.

그의 아픔이나 그 동안의 고통을 논하기보다는 오로지 게이 홍석천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게이는 어떻게 살까? 게이는 뭘 먹을까? 등등 그의 사생활이 궁금했을 뿐, 그 누구도 홍석천의 아픔을 보듬지는 않았다.

 

그 당시 나도 TV에서 홍석천이 칩거 생활 중일 때 보게 된 다큐 프로그램이 있었는데...정말 보면서 "아...진짜 힘들겠다."라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잘 알고 지내던 방송 동료는 물론 출연하던 프로그램까지 줄줄이 취소되고 연락이 끊겼었다고.

심지어 사는 곳 인근 초등학생들이 매일 찾아와 욕설과 낙서를 하기도 했단다.

 

 

2. 살기 위해 시작한 요리 공부, 그리고 창업

 

요즘은 요리, 음식점 창업하면 모두 백종원을 언급하지만 그 시작은 사실 홍석천이었다.

홍석천은 모든 방송이 끊기고 지인들과 연락이 차단되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다들 그를 만나길 꺼려했으니 말이다.

( 남자라고 다 좋아하는 건 아닐텐데, 왜들 만나길 두려워 하는지는 의문 )

 

 

이태원동에 오픈했던 레스토랑 '아워플레이스'

 

 

물론 초반부터 그의 사업이 잘 되었던 건 아니다. 아무리 공부를 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창업했다고는 해도 열정만으로 사업이 잘 되는 건 아니다.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초반에는 거래처 만드는 것도 어려웠고 게이라는 인식때문에 손님들도 뜸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성실함과 노력으로 조금씩 이를 극복했고 추후 장동건, 현빈, 주진모같은 스타급 연예인들이 찾아오면서 그는 장사의 귀재로 급부상했다. 꾸준한 노력과 메뉴 개발, 상권 분석 등으로 그는 한때 음식점만 10여 곳, 건물주까지 됐다.

그리고 그 일대를 - 홍석천 거리-라고 부를 정도였다. ( 내가 알기론 OO거리의 원조는 아마 이 분 일 듯 )

 

 

3. 아직도 게이라고 불리긴 하지만 이제는 인간 홍석천으로 거듭나다

 

2003년 잠깐 방송에 복귀했지만 분위기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2012년이 되어서야 조금씩 방송 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

지금은 다양한 프로그램에 나와 종종 셀프 디스를 하며 웃음 코드로 승화했지만 오늘이 오기까지 그의 고통과 인내를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때 자살까지 생각했을 정도라니 말이다.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홍석천

 

 

그는 커밍아웃 후 한때는 잠시 숨었지만 당당하게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그를 향한 편견에 맞서 싸웠다. 그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이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훌륭한 멘토가 되어 주었다. 자신도 힘들게 극복을 했고 또 힘든 시기였을텐데 그는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잘 알기에 귀찮아하거나 싫은 내색없이 언제든 손을 잡아주었다.

 

홍석천은 미혼이지만 아들과 딸이 있는 가장이기도 하다. 이혼한 친누나의 자녀들을 자신의 호적에 입적시켜 스스로 부모가 되길 자처했다. 아무리 삼촌이라지만 쉽지 않은 결정임에도 그는 "어차피 결혼 생각이 없다."라며 삼촌이자 아빠의 길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 딸들은 그의 뒷바라지 속에 해외에서 학업을 이어갔고 딸은 결혼을 해 그에게 손주까지 안겨주었다.

 

 

 

 

진짜 홍석천의 인생을 이렇게 보다 보면 "나는 과연 저런 고민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세상의 시선을 견뎌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마 나는...모르겠다. 견딜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없다.

그래서 그가 더 대하게 보이나 보다.

언제 한번 마주치게 되면 사인이라도 받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