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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세계경영 - 김우중

김우중 前 대우그룹 회장의 모습

 

 

1. 30대에 임원 승진을 할 정도로 똑똑했던 청년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우중 회장은 60년 연세대를 졸업, 66년까지 의류생산업체인 한성실업에서 근무를 했다. 그리고 창업에 대한 꿈이 있던 그는 친구들과 함께 자본금을 모아 대우실업을 창업, 상무로써 기업가로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70년엔 대우실업의 대표가 되면서 본격적인 기업가로의 면모를 보이게 된다.

 

 

 

대우그룹 로고

 

서울역 인근에 위치한 옛 대우그룹 본사 선물, 지금은 서울스퀘어가 되었다.

 

2. 대우그룹의 신화 시작되다.

 

김우중 회장의 부친이 당시 대통령이던 박정희의 사범학교 시절 은사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때문에 당시 정권의 비호 아래 그룹 확장을 원활하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1971년 김우중 회장은 자회사 '내셔날의류'를 세우고 2년 뒤 영진토건, 동양증권을 인수해 본격적으로 그룹 만들기에 나선다. 그리고 내셔날 의류를 대우전자로 전환, 가전제품 시장에 뛰어들었고 76년에는 한국 기계를 인수해 중공업 분야에도 뛰어들게 된다.

 

김우중 회장은 멈추지 않고 공격적으로 기업들을 인수, 계열로 합류하면서 글로벌 그룹으로의 면모를 다지기 시작하는데 78년에는 옥포조선소를 인수해 대우조선을 만들었다. 그 다음해에는 새한 자동차를 인수해 대우 자동차를 출범시킨다. 대우 그룹은 그렇게 탄생됐고 70년대 말에는 대한민국 4대 그룹 명단에 그 이름을 올리게 된다. 당시 4대 그룹은 삼성, 현대, 럭키금성(후의 LG),대우 등이었다.

 

당시 대우의 주력 사업 분야는 주요 사업분야는 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컴퓨터·관광·호텔·증권업 등이었으며 1985년 30억불 수출탑을 수상하는 등 대한민국 기업의 이름을 해외에 널리 알리는데 일조를 한다.

 

 

3. 무리한 확장 사업은 IMF로 인해 덜미를 잡히고 그룹은 해체된다.

 

대우그룹의 전신인 대우실업 모습

 

 

사실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대다수의 기업, 그룹들은 방만한 경영 체계를 이루고 있었다. 경제 성장기와 정부의 경제 개발 원칙에 따라 그룹들은 많은 자본을 빌려 해외 지사, 공장, 계열사 등을 확장시켰는데 대우 역시 그런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해외지사를 처음으로 만든 대우는 계속 공격적인 확장과 기업 인수에 나섰고 그로 인해 많은 부채와 문제점을 가지게 되었다. 더욱이 1998년에는 쌍용자동차를 인수, 자동차 제조 부분에서 확장을 꿈꿨던 대우였다.

이미 41개의 계열사, 국내 직원 수 10만명, 해외 직원 21만명, 해외법인만 396개사에 달할 정도로 대우의 규모는 컸지만 내실은 허술했다.

 

자산규모 83조에 달할 정도로 거대란 그룹 대우는 IMF가 터지자 자본 문제를 겪으면서 엄청난 부채에 시달려야 했고 결국 1997년 한 해에만 9조원에 달하는 환차손실을 겪었다.

대우중공업, 대우통신, 대우전자, 대우자동차, 대우 캐피털 등 12개의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됐고 대우 증권 등 13개 계열사는 독자 회생의 운명에 처해진다.

 

1999년 김우중 회장의 사표가 수리되고 본사 집무실 역시 폐쇄 조치가 내려진다.

이후 해외로 피신한 김우중 회장은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입국을 미루다가 2005년 입국을 하게 되고 곧 검찰에 소환돼 징역 8년 6개월,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 9천여만원을 선고받는다.

이후 2014년 추징금의 약 0.5%인 880억원을 납무하였지만 아직도 17조가 넘는 추징금이 미납된 상태이다.

 

 

5. 2019년 12월 세계 경영 김우중 회장, 고인이 되다

 

2019년 12월 9일 83세의 일기로 영면에 들어간 故김우중 회장

 

 

혹자들은 고인이 생전에 많은 재산을 이미 자녀들에게 물려주었다고 비난하지만 사실 70~80년대 기업을 창업해 재벌이 된 사람들 중 그러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한 단점들만 볼 것이 아니라 고인이 생전에 이룬 업적과 그 노력들도 알아주어야 할 것이다.

故김우중 회장은 비록 자신의 모든 것이던 대우의 몰락으로 많은 명성과 부, 이미지를 실추했지만 한때 "세계경영"이라는 슬로건 아래 수 많은 국가에서 한국 기업의 이름을 드높였던 것 역시 사실이다.

지금도 중동에서는 "대우"라는 브랜드 이름이 갖는 파워가 상당하다고 하지 않던가.

 

김우중 회장은 2019년 12월 9일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년 동안 투병 생활을 하던 그는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특별한 유언없이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대우 그룹과 김우중이라는 이름은 이제 추억 속으로 묻혀지겠지만 그가 보여 준 꿈과 용기, 그리고 사업가로의 추진력은 분명 많은 기업인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