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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남자들의 연인 - 왕조현

90년대 세계적인 미모로 이름을 떨쳤던 왕조현

 

 

서양에 브룩쉴즈, 소피마르소가 있었다면 동양에는 천녀유혼, 섭소천 자체였던 '왕조현'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시대를 풍미하고 미모로 명성을 날린 이 세 명의 미녀 모두 나이가 비슷하다. 

왕조현은 1967년 1월 31일 대만 타이페이에서 출생했으며, 키는 178cm라는 설도 있었지만 그녀의 공식적인 발언 등으로 175cm로 알려졌다. 

 

지금도 175cm가 작은 키는 아니지만 그때 당시에는 엄청난 키였다. 그녀와 호흡을 맞췄던 성룡, 장국영, 양조위 등 남자 배우들이 모두 170cm ~ 175cm 였기 때문에 영화상에서는 왕조현이 더 커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여배우가 더 커도 별 문제는 안되지만 당시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남자배우들의 위치나 극 중 역할, 이미지 때문에 굉장히 민감한 문제였다.

 

 

| 청소년기까지 농구 선수를 했던 키다리 미녀, 길거리 캐스팅으로 광고계 데뷔

 

왕조현은 사실 배우가 되겠다는 꿈은 없었다.

 

 

농구 선수 출신이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왕조현은 농구를 하기도 했었는데, 일각에서는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였다는 설도 있지만 실력이 그 정도는 아니였다고 한다. 실제 농구를 했던 것도 중학생 때부터였기 때문에 그녀가 공을 잡았던 기간은 길어야 3년 정도. ( 하지만 출연작에서 잠깐 농구를 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드리블과 개인기가 곧잘 되어 있던 모습이 잡혔었다. )

 

 

 

 

길거리 캐스팅으로 의류 스포츠 모델이 된 왕조현은 이후 홍콩으로 건너가 1984년 <금년호반회흔랭>이라는 영화로 데뷔하게 된다. 그 후 3~4편의 영화에 더 출연을 했지만 큰 빛은 보지 못했다.

그나마 1986년 주윤발과 함께 출연한 <의개운천>으로 얼굴을 알리는데 성공한 그녀는 1987년 인생 최고의 작품을 만나게 된다.

 

 

전 세계 남성의 로망이 되다. 천녀유혼 섭소천

 

천녀유혼은 1,2,3편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故장국영은 1,2편에서 호흡을 함께 했다.

 

 

1987년 정소동 감독의 <천녀유혼1>에서 귀신 여주인공 섭소천 역을 맡아 청순하면서도 고전적인 동양의 미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90년 천녀유혼2, 91년 천녀유혼3에 연거푸 출연했고 모두 흥행에 성공한다. 물론 중간 중간 다양한 영화에도 출연을 했지만 천녀유혼의 아성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세계적인 스타로 올라섰지만 이후에는 천녀유혼의 이미지가 너무 강한데다 캐릭터성이 소모돼 뚜렷한 주목을 받지 못했고 연기력 논란도 일었다. 

 

1993년 광고 촬영차 한국을 방문,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도 출연했었다. 하지만 당시 광고 촬영장에서 까칠한 요구와 갑질로 원성을 사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천녀유혼에서의 왕조현, 특히 장국영과의 키스장면에서 내가 왜 눈을 감았지? ㅋㅋㅋ

 

 

시리즈로 3편까지 모두 출시됐음에도 대중들은 천녀유혼의 섭소천을 잊지 못했다. 물론 아류작품들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모두 천녀유혼을 뛰어넘기는 커녕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외면당했다.

결국 애니메이션으로 1997년 제작되어 출시되기도 했으며, 2011년에는 리메이크 된 작품이 재탄생되기도 했다. 리메이크 된 작품에서는 떠오르는 중국 미녀 배우 유역비가 섭소천역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고 나름대로의 호평도 받았지만 결국 왕조현을 능가한다는 평을 듣진 못했다.

 

 

| 끊임없는 염문, 그리고 은퇴 반복...

 

 

결혼설이 나돌았던 왕조현의 남자들, 임건악과 제진

 

 

세계가 인정하고 반한 미녀이지만 왕조현의 여자로써의 삶은 사실 그리 행복한 편은 아니였다.

( 물론 왕조현은 다르게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 먼저 홍콩 재벌인 임건악과의 스캔들은 왕조현에게도 치명적인 이미지 타격을 줄 정도였다. 더욱이 임건악은 자녀도 있던 유부남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결혼설도 나올 정도로 당시 화제였지만 결국 왕조현은 임건악과 결혼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오랜 우정을 나눈 사이기도 했던 제진과의 연애를 하면서 드디어 왕조현도 결혼을 하는가 싶었지만 결국 제진과도 결별을 하면서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러면서 점점 연예계에 환멸을 느낀 왕조현은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하지만 1997년 다시 활동을 재개했고 싱글 앨범 발매, 일본 활동 등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는가 싶었지만 2001년 <유원경몽>을 끝으로 다시 은퇴를 한다. 그리고 2004년 다시 영화 <미려상해>에 출연하며 복귀를 하는 듯 했지만 이미 왕조현이 설 자리는 그리 많지 않았다. 활동이 뜸했던데다 세월이 많이 지났음에도 <천녀유혼>의 이미지가 너무나 강한 탓이었다. 2005년 그녀는 은퇴를 선언하고 캐나다로 이민을 하면서 공식적인 연예 활동을 끝맺었다.

 

 

캐나다에 살면서 종종 언론에 노출됐던 왕조현

 

 

배우로써 은퇴를 했지만 왕조현은 대중들이 원하던 배우였고 가장 궁금해하는 스타였다. 캐나다에서 목격담이 자주 언론에 노출됐고 그녀의 근황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다. 한때 살이 급격히 찐 모습이 언론에 노출되어 건강 이상설이 나오기도 했으며, 급격한 노화 사진으로 성형설도 나왔었다.

또한 1990년대 임건악과의 관계에서 사생아를 낳았다는 추문도 나돌았다. 실제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연예계에서는 사실화되었고 왕조현은 이에 뚜렷히 해명이나 입장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에 대한 소문에는 신경을 쓰는 듯 해명 아닌 해명을 종종 SNS를 통해 하기는 했다.

뚱뚱한 체형이 논란이 됐을 당시에는 불과 얼마 후 날씬한 자태를 뽐내는 사진이 바로 언론에 공개됐으며 성형 이상설에는 SNS를 통해 예전의 미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왕조현은 여전히 잘 살고 있는 듯 하다.

 

 

만 53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30대의 미모를 자랑하고 있는 왕조현.

한때 책받침, 화보로 남자들의 방과 책가방에 늘 함께였던 그녀는 아직 미혼이다. 최근 19살 연하의 남성과 결혼설이 나오고도 있지만 그녀는 영원히 많은 남성들의 첫사랑이자 영원한 섭소천으로 남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