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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으로 들은 이야기

지명 '의정부'는 왜 의정부가 됐을까.

1900년 광화문의 모습, 이때까지도 조선의 풍경을 잘 유지하는 듯 했다.

 

 

의정부로 이사 온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다른 지역명들의 유래는 익히 들어왔으나 유독 내가 살고 있는 의정부는 '왜 의정부가 됐는지' 종종 궁금했다.

먼저 현재의 의정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의정부 지명의 변화

 

지금의 의정부는 원래 양주군에 속해있던 곳으로 한국 전쟁직후 미군 기지가 들어서면서 인구가 증가, 1963년 시로 승격되면서 양주군에서 분리, 독립했다.

삼국시대에는 창화현, 마홀 등으로 불리다가 통일신라 때 내소군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이후 고려에 들어와 견주군, 창화현으로 개칭되었다가 조선시대에 양주로 개칭, 조선 말기인 1896년 경기도 양주군이 되었다.

1942년 양주면에서 의정부읍으로 승격되었고 63년에 시로 승격되면서 의정부시가 되었다.

 

 

경기 의정부시 전좌로에 있는 회룡사의 설경

 

 

의정부 지명에 대한 유래, 사실과 다르다

 

의정부하면 조선시대 최고 행정기구였던 '의정부'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 기구의 소재는 광화문에 있었다.

그런데 왜 행정기구인 의정부와 지명 의정부의 한자가 똑같을까.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기존에는 태조 이성계와 의정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설이 유력했다고 한다. 이성계가 한성으로 들어가기 전 이 곳에 들렀는데 그때 대신들이 이 곳으로 마중을 나와 국정을 논했다고 하여 의정부의 시초가 됐다고 하는가 하면 현재 전좌로에 위치한 회룡사의 원래 명칭은 법성사였는데 이성계가 한성으로 회귀하면서 들러 '용이 되돌아왔다'하여 회룡사가 됐다는 말이 있었다.

 

또한 전좌로의 전좌 역시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이 만난 곳, 즉 "두 임금이 만나다"라는 뜻으로 전좌라고 했다고 하나 어느 기록에도 그러한 사실이 명시되어있진 않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양주, 노원은 이성계가 들렀다는 기록이 있지만 의정부는 없다고 한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태조 이성계와 의정부 지명은 전혀 무관하다는 말이다.

 

 

 

조선시대 삼정승의 근무처였던 의정부의 모습

 

 

| 의정부에서 관리하던 지역, 당시 조선 팔도에 많이 있던 지명으로 현재는 의정부만 유일하게 사용 중

 

의정부라는 지역 명칭은 꽤나 오래 전부터 사용됐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700년대에도 한자는 다르지만 여러 정황, 기록 등으로 비춰볼 때 의정부로 불리고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금의 의정부는 당시 사람들이 의정부라고 불렀는데 행정기구인 의정부에서 유지 관리하던 지역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당시 의정부라는 명칭이 들어간 지역이 전국 어디에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다 명칭이 개편되고 유일하게 의정부만 의정부라는 명칭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의정부의 명칭이 어떤 식으로 왔든간에 의정부는 조선시대에도 수도 한성으로 가는 길목으로 중요한 곳이었다는 점은 다들 알 것이다. 현재는 경기도에 위치한 수도권 도시 중 유일하게 개발이 덜 된 지역으로 남아있는데 이 역시도 최근까지 미군 기지가 있었기 때문으로 군사 시설 지역이라는 인식이 강해서일 것이다.

오죽하면 부대찌개 거리가 지역명소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