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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으로 들은 이야기

현대그룹과 현대자동차 그룹은 다른 회사이다.

2020 도쿄 올림픽 양궁 부문을 석권한 대한민국, 양궁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그룹 정의선 회장

 

 

2020 도쿄 올림픽 양궁 부문 금메달을 석권한 대한민국.

양궁은 역대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의 메달밭으로 유명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세계 양궁연맹은 대한민국의 독주 체제를 막기 위해 여러 번에 걸쳐 규정을 변경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은 그럴 때마다 보란 듯이 메달을 획득하면서 세계 No.1의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오죽하면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발전이 올림픽 금메달보다 더 하기 어렵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양궁은 대중적인 스포츠는 아니지만 탄탄한 시스템을 갖춘 대한민국의 비인기 종목이자 응원 인기 종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선수들, 협회, 국가의 지원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대기업의 전폭적인 후원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한다. 바로 30년이 넘게 양궁 분야에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 현대 자동차 그룹이다.

 

정몽구 명예회장에 이어 회장직에 오른 정의선 회장은 야구(기아 타이거즈)보다도 양궁에 더 주력할만큼 많은 애정을 쏟고 있다고 한다. 정몽구 회장이 1980년대 중반 양궁 대표팀의 경기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시작 된 양궁 사랑은 아들 정의선 회장에게 이어져 자금과 기술력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이 정의선 회장에게 달려가 " 회장님. 금메달 땄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현대 자동차 그룹은 양궁 선수들과 격없이 지낸다고.

 

현대 자동차가 현대 그룹의 계열인 듯 보이나 실질적으로 현대 그룹과 현대 자동차 그룹은 특별히 별 관계가 아니다.

현대라는 기업명은 사용하고 있지만 말이다.

오늘은 현대 그룹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다. 

 

 

 

10대 소년이 혈연단신으로 시작한 사업, 현대 그룹으로 성장하다

 

 

현대그룹 창업주 故정주영 회장

 

 

현대는 잘 알다시피 故정주영 회장이 창업한 기업이다. 1946년 자동차 산업, 47년 현대토건을 시작으로 성장한 기업이 바로 현대그룹이다. 다만 공식적으로는 1950년 출범한 현대건설을 필두로 해 시작 된 기업이라 보는 측면도 있다.

현대건설은 故정주영을 비롯해 서울시장과 대통령까지 지낸 전설적인 입지를 지닌 이명박이 몸담았던 기업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현대사와 기업사에서 故정주영 회장의 비중이 절대 작지 않다. 

1915년 강원도 통천 출생인 그는 10대에 소 판 돈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 오늘의 현대를 일으킨 전설적인 기업인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뿐 아니라 1990대 초에는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 진출을 하였고 훗날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지만 당선되지는 못했다. 1998년에는 김대중 정권의 대북 정책에 함께 힘을 쏟기도 했다.

 

소 1,000마리를 직접 이끌고 방북을 해 화제를 모았으며 이를 통해 남북 협력 사업의 초석을 다졌으며 금강산 관광권을 따내면서 제한적이긴 하지만 그토록 한민족이 소망하던 북한 여행이 이뤄지기도 했다.

기업인으로 잘 알려진 정몽구, 정몽준 등 8남 1녀를 두었으며 2001년 87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현대지만 현대가 아닌 기업. 아들들의 죽음, 그리고 형제의 난

 

故정주영 회장은 뛰어난 기업인이자 타의 모범이 되는 인물이었지만 소위 말하자면 자식 복은 없었던 것 같다. 장남 정몽필을 비롯 넷째 정몽우를 일찍 잃었다. 또한 故정주영 회장이 사망한 후 2년 뒤 끔찍하게 아꼈던 현대그룹 회장 5남 정몽헌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사망한다. 

 

여느 재벌가들이 다 그렇지만 현대가라고 해서 형제들의 회장 다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故정주영에겐 장남 정몽필이 있었지만 그는 아버지와는 사업 방향이나 생각이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결국 가족을 이끌고 이민을 떠났고 훗날 귀국해 현대제철의 전신 '인천제철'을 맡게 되지만 교통사고로 1982년 사망한다.

 

장남의 죽음으로 故정주영 회장의 실질적 장남은 차남이던 정몽구 회장이 맡게 된다. 정몽구 회장은 1938년 역시 아버지와 같은 고향인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나 1970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하면서 기업인이 된다. 1985년 대한양궁협회장에 오르면서 양궁과 인연을 맺고 여러 계열사를 연임하면서 실질적인 그룹 후계자로 성장하고 1996년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한다. 하지만 1998년 동생 정몽헌이 공동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공동 운영 체제로 바뀌게 된다.

 

정몽헌은 故정주영의 다섯째 아들로 1975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하면서 일선에 뛰어들게 된다. 故정주영 회장이 총애했던 아들로 유명하며 형 정몽구와 함께 현대그룹의 공동 회장으로 활동한다.

이때부터 정몽구-정몽헌 회장의 형제의 난이 발생한다. 형제의 난에서 승리를 하며 현대그룹의 명실상부한 총수가 되고 금강산 개발 사업을 주관하며 입지를 구축하지만 형제들과의 사이는 틀어지게 된다.

 

2002년 불법 대북송금 사건이 불거지면서 강도 높은 조사와 함께 그룹이 경영난에 빠지게 되면서 2003년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후 현대그룹은 정몽헌의 아내 현정은이 회장직에 오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故정주영 회장의 아들들과 사이가 틀어지게 된다. 이후 정몽구 회장은 현대자동차 그룹을, 정몽근 회장은 현대 백화점 그룹을, 잘 알려진 정몽준은 현대중공업을 시작으로 했지만 아버지와 뜻이 같아 정계에 진출, 축구협회장을 맡으며 기업인이라기 보다는 정치인으로 활동한다. 정몽윤은 현대해상을, 마지막으로 정몽일 회장은 현대기업금융을 맡으며 따로 독립을 한다.

 

 

 

정몽구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만남, 악수는 나눴지만 둘의 사이는 지금도 어색하다고 한다.

 

 

하나의 현대는 과연 불가능한 꿈일까.

 

경영권 다툼에서 밀려난 형제가 계열사를 가지고 독립을 하거나 또는 무일푼으로 쫓겨나 새로운 기업을 만든 일화는 기업사에 있어 흔한 스토리이다. 현대가에 있어 경조사에는 서로 참석을 하는 편이지만 현대자동차 그룹의 정몽구 명예 회장과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사이는 여전히 데면 데면하다고 한다.

 

현대그룹과 자동차, 해상, 중공업 등 굵직한 현대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회사들이 서로 독립된 형태로 일반적인 계열 형태는 아니지만 집안의 일원으로 경조사에는 모두 참석한다.

현대 그룹은 대한민국 대기업이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상당히 그 규모가 축소되었다. 현대 엘레베이터 외 이렇다 할 유명 기업은 없다. 

 

특히 현대자동차 그룹은 정몽구 회장이 독자적으로 일으켜 세웠다고 할 만큼 세계적인 자동차 완성업체로 우뚝 섰고 현해해상, 현대 중공업도 모두 굴지의 기업으로 여전히 활동 중이다.현대그룹은 다시 하나의 현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