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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으로 들은 이야기

흥미로운 조선 7 | 추노, 조선 시대 노비에 대한 이야기

2010년 KBS 드라마 < 추노 >

 

 

 

 

2010년 KBS에서 방영 된 드라마 < 추노 >.

도망 노비를 잡는다는 소재를 사용한 허구와 실제 사실을 가미한 팩션 드라마라고 한다.

이전까지만 해도 추노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었지만 해당 드라마의 인기로 인해 ' 추노하다 '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는데 " 잡아데려온다. "는 뜻이 아닌 " 도망간다. "는 반대적인 의미로 유행됐다는 게 특징이다.

 

드라마에서는 병자호란 직후 도망 노비가 속출했다고 나오지만 추노에 대한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호구를 보고할 때 가족과 노비에 대한 내용을 기록, 관청에 제출하는데 관청에 보관되던 기록들이 현재는 모두 소실되어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는 게 학계의 이야기이다. 

다만 조선실록에 몇몇의 사례와 추노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어 추노가 실제했다는 사실정도는 알 수 있다고 한다.

 

 

 

 

추노( 推奴)의 뜻, 실제 도망 노비에게 낙인을 찍었을까.

 

흔히 추노라고 하면 추적을 한다는 뜻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추노의 '추'는 쫓을 추()가 아닌 밀 추()를 쓴다고 한다. 따라서 추적한다는 뜻이 아닌 ' 본래 주인에게 되돌려준다. '는 의미라고 한다.

과거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비제도가 존재했다. 우리나라보다 서양은 근래까지도 노예제 풍습이 남아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특히 조선 중기 이후 노비의 수가 급격히 늘었는데 전란이나 탐관오리들의 횡포로 인해 먹고 살기 위해 스스로 노비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조선 인구의 과반이 넘는 수가 노비였다고 하니 그 수를 짐작할 수 있다.

원래 추노는 도망 노비를 데려오는 일 외에도 외거노비 ( 주인의 소재지나 관청에서 떨어져 지내는 노비 )에게 돈을 받아오는 일도 했다고 한다.

 

드라마에서는 병자호란인 1636년 이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실록기록을 보면 대체로 사실인 듯 하다.

추노에 대한 문제는 당시 조선 조정에서도 골칫거리였는데 주로 숙종, 경종, 영조 실록에 그 기록이 있다고 한다. 숙종이 1674년에 즉위했으니 얼추 시기는 맞아떨어진다.

 

 

 

실제 도망 노비를 찾으면 낙인을 찍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드라마에서 보면 도망간 노비를 추노꾼들이 데려와 관청에 넘기고 이를 다시 양반들에게 데려다 주는데 이때 양반들이 " 다시는 도망치지 못하게 하겠다. " 라며 노비들의 얼굴에 낙인을 찍는 모습이 등장한다.

이것은 사실이라고 하는데 기록을 살펴보면 고려시대에도 범죄자, 도망 노비의 얼굴에 낙인을 찍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는 일종의 형벌적 의미로 서양에서도 널리 사용되던 형벌이다.

 

남자 노비는 왼쪽 볼에, 여자 노비는 오른쪽 볼에 낙인을 찍었으며 남자는 ' 奴'자, 여자는 '卑' 자를 새겼다고 한다.

그 중 가장 큰 형벌은 이마에 새기는 것으로 주로 鯨(경)자를 새겼는데 이것은 ' 경을 칠 놈 '이라는 뜻으로 낙인이 새겨진 노비는 천민 중에서도 최하위로 분류됐다고 한다. 즉, 도망 노비는 동물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았다는 말이다.

 

일부 잘못 알려진 사실은 흔히 노비는 주인인 양반이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을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법을 통해 아무리 양반이라 할지라도 노비를 함부로 죽이면 처벌된다는 규정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노비도 재산으로 취급되던 시대상이기에 대부분은 지켜지지 않았지만 일부 양반들은 노비를 함부로 죽였다는 이유로 처벌받았다는 기록도 있다고 전해진다.

 

 

 

 

노비가 양반을 죽이고 추노가 날뛰던 조선사회, 조정에서도 큰 골치로 기록

 

당시 추노는 조정에서도 큰 골치로 여겼다고 기록된다. 추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정조 2년인 1778년의 일이다.

양반들이 추노에 진심이던 것은 조선 후기로 넘어오면서이다. 전란과 세도가들이 나타나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이 닥친 양반들이 오래 전 문서를 근거로 옛 노비들을 찾으러 다니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물론 실제로 도망 노비도 있었지만 이미 종속관계가 정리됐음에도 과거의 기록문서를 가지고 다시 노비로 삼는 부조리가 성행하게 된 것이다. 

 

특히 나라의 재앙이나 기근이 심할 때에는 추노를 법으로 금지했는데 이를 지키지 않는 양반들이 많았다고 한다.

숙종 12년에는 " 해미현감 강필건이 병자년에 도망간 노비일가를 끝까지 추격하는 과정에서 혹독하게 심문을 하는 바람에 한 마을이 텅비는 사태가 벌어졌다. "고 기록하고 있으며 경종 13년에는 " 온성부사 노흡이 도적을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추노를 겸해 부민을 마구 약탈해 받은 뇌물이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라는 기록이 있다.

영조 즉위년에도 " 국법으로 추노를 금하라 하였으나 자신의 직책을 이용해 공무를 빙자하여 사욕을 채우고 도적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추노를 행하고 있으니 그 폐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라고 적혀있다.

 

 

 

추노에 얽힌 실제 이야기는 실록에도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기록은 소실됐다고 전해진다.

 

 

 

특히 당시 조선은 가뭄이나 재난재해가 발생했을 때에는 반드시 추노를 금지시켰다. 재난 재해로 빈궁해진 양반들이 노비들을 쥐어짜는 행태를 막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관아에서도 이러한 노비 송사는 꺼려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몰락한 양반들은 자신들의 노비라고 주장을 하고 노비는 오래 전에 종속관계를 정리했다고 하니 이를 입증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여러모로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후기에는 노비들이 장사 수완을 발휘해 부를 축적해 신분을 세탁하거나 양반 가문의 족보를 사는 등의 일이 많았는데 이 과정에서 관리를 매수해 추노를 하러 온 양반을 처벌하게 하거나 살해하는 등의 문제도 있었다고 한다.

드라마에서도 주인대감을 살해하고 동생 언년이와 도망을 간 큰놈이가 훔친 재물을 이용해 양반의 호적을 사 양반 행세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 역시 사실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또한 극중 대길이패가 노잣돈을 마련하기 위해 음식을 대접받거나 지나가는 행인을 심문해 돈을 빼앗은 장면이 있는데 이것 역시 숙종 27년 기록을 보면 비슷한 사례가 명시되어 있다고 하니 드라마 < 추노 >는 역사적 사실을 고증해 만든 드라마가 분명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내용 100% 진짜는 아니고.

 

 

 

 

조선 후기 풍속화가 김득신(1754&sim;1822)의 반상도(班常圖)

 

 

 

조선시대 노비는 주인따라 그 행세가 달라져, 신분제 폐지는 1894년즈음

 

영화 < 명당 >을 보면 흥선군 일행이 세도가인 장동김씨의 담벼락을 넘자 지나가던 장동김씨의 노비가 " 당신들 누구요? " 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엄연히 신분제가 존재하던 조선 사회에서 노비가 양반에게 말을 놓는 경우는 곤장을 맞거나 심할 경우 죽음을 면치 못할 일에 해당하지만 조선 후기에는 가능했던 일이다.

조선 후기 화가 김득신의 작품 반상도를 보면 양반을 모시고 길을 가는 노비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길을 걷던 양인 부부는 양반이 길을 지나자 길 옆에 비켜서서 머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데 노비들의 모습은 기세가 등등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당시 노비들이 주인의 권세에 따라 행동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한다.

 

" 사람 위에 사람없고 사람 아래 사람없다. " 는 말이 있다.

하물며 신분제가 폐지 된 현대 사회에서 양반 가문을 운운하는 것조차 시대착오적인 발언이라 욕을 먹는 시대이지만 과연 우리가 사는 현 시대에도 신분의 고하가 없을까.

신분제가 있던 조선 시대를 미개하다고 격분하면서도 우리가 사는 현 시대에는 직업에 따른 고하가 존재한다.

택배기사, 경비원, 마트 종업원 등 직업을 신분삼아 벌어지는 서민갑질. 그것과 조선의 신분제가 무엇이 다를까 싶다.

 

차라리 조선시대에서는 태생, 핏줄이 중요시 여겨지고 그것이 당연히 받아들여지던 시대이니 신분에 따라 사람의 대우가 달라지는 현상들이 당연하게 여겨진다고 할 수 있지만 차별과 제도가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직업의 귀천 의식은 그 무지함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 노비를 막 대하던 조선 시대는 정말 미개해. " 라는 사람들을 보면 " 너나 주접떨지말고 살아. 그때는 그게 당연시되던 시대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 라고 이야기를 한다.

지금의 인식으로 과거 시대를 평가한다는 자체가 이미 모순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