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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X파일

대한민국 엽기살인 ⑪ 가족을 죽인 대한민국 최초 여성연쇄살인마

2022년 대한민국 보험사기 금액이 1조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대부분 생계형 범죄였다.

 

 

 

 

가입할 땐 어떤 사고이든 지켜줄 것처럼 하지만 막상 보험금을 탈 때에는 절차마저 까다로운 보험.

그럼에도 사람들이 보험에 가입하는 이유는 단 하나. 막상 큰 병이나 사고 발생에 대해 대비하고자 함이다.

보험사의 까다로운 가입 규정과 절차가 있음에도 사고를 위장, 조작하여 보험금을 타내는 사기범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심지어 보험금을 탈 목적으로 가족, 아내, 친구 등을 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2022년 보험사기로 지급 된 금액이 1조원을 돌파했다고 한다. 생계형 범죄라고 해도 보험사기는 정당화될 수 없지만 돈을 목적으로 사람을 살해하는 것 역시 용서받지 못할 범죄이다.

 

우리는 보험사기나 보험살인이 1997년 김선자 사건이나 2005년 엄여인 사건을 떠올리겠지만 의외로 보험때문에 살인이 발생한 것은 그보다도 더 오래 전인 1930년대라고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이래 첫 보험 살인이자 여성으로 살인을 저지른 연쇄살인은 1976년 박분례 보험살인 사건이다.

여성이 그것도 보험 살인이라는 점도 놀랍지만 이 사건이 더 충격적인 것은 그 대상이 바로 가족들이었다는 점이다.

 

 

 

 

1. 보험에 눈을 뜨다.

 

1931년생인 그녀는 중학교까지 다녔던 걸로 알려졌다. 당시 1940 ~ 50년대의 우리나라 상황을 고려하면 대단한 학력이며 집안이 그래도 꽤 부유한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가난한 나라였기 때문에 자녀들 중에서도 장남 또는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에게 모든 것을 거는 그런 시대였다.

당시 국민학교 교문만 넘어도 대단했을 시기에 중학교까지 다녔다는 건 그래도 집안의 재산이 어느 정도 있었다고 가정해도 무리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1976년 대한민국 건국이래 첫 여성연쇄살인마로 지면을 장식한 박분례, 사건 당시 그녀의 나이 50대 중반이었다.

 

 

 

시대상에 따라 박분례는 19세에 결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그리 녹록하지 못했고 1남 1녀를 낳고 이혼을 했다고 한다. 당시 시대상을 고려하면 꽤나 놀라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당시 워낙 미인급에 속했던 박분례는 연하의 남성을 만나 동거를 시작했고 지역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구가했다고 한다.

이때 박분례의 인생을 뒤바꿔놓을 계기가 마련되는데 바로 국민학교 동창 A씨였다.

당시만 해도 보험은 국민들에게 익숙한 상품이 아니였다고 한다. 하지만 동창 A를 통해 보험의 특성을 알게 된 박분례는 동창에게 애원하다시피해 보험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알게 됐고 결국 보험 설계사의 직업을 갖게 됐다고 한다.

 

입사 초 박분례는 여느 일반 여성들과 크게 다를 게 없는 그런 여성이었다고 한다.

동료들과도 잘 지냈고 어려운 환경의 어린 여후배들을 보면 작은 것이나마 돕는 그런 여성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박분례가 변하게 된 계기가 곧 발생한다.

바로 사고를 통해 거액의 보험금을 수령하는 고객들을 보게 되면서였다.

아마도 당시는 지금처럼 과학수사나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강하지 않았기에 사고를 통한 청구에 있어 관대했을 것이다.

 

 

 

 

해당 사건과는 무관하지만 1970년대의 보험증서

 

 

 

 

2. 첫 살인, 그리고 보험살인에 적성을 갖게 되다

 

박분례의 첫번째 희생자는 어머니끼리 친분이 있던 최씨였다. 이때가 1974년 10월의 일이다.

박분례보다 12살이나 어렸던 최씨는 어머니간의 친분이 있어 어려서부터 언니 동생하던 사이였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꼭 핏줄이 아니여도 가족처럼 지내던 관계의 지인들이 있던 시대였다.

박분례는 청산가리가 든 우유를 최씨에게 먹여 살해, 당시 22만원의 보험금을 수령하게 된다. 지금으로 치면 700만원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아마도 이것은 나름의 연습게임이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박분례의 모습, 그리고 친언니의 집을 태웠던 당시.

 

 

 

당시 22만원은 꽤나 큰 돈이었다. 당시만 해도 소주가 10원, 쌀 2800원, 라면 50원이던 시대였다.

대기업 임원이 약 60만원을 받던 시절임을 고려하면 결코 작은 금액은 아니다. 당시 공무원은 2만원이 안되는 금액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 박분례는 범행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고 제 2차 범행을 계획하게 된다고 한다.

바로 친언니의 가족을 대상으로 말이다.

 

당시는 가족에 대해 끈끈함이 강한 시대였고 사람을 죽인다는 건 어중간한 원한으로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더불어 여성이 살인을 한다는 건 시대상에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친언니 박분선은 1921년생으로 박분례보다 10살이나 많은 형제였다. 이미 결혼을 해서 남편, 군복무 중인 아들, 중학생이 된 딸이 있었다고 한다. 살림은 가난했지만 특유의 밝은 성격으로 동네에서도 평판이 좋았다고 한다.

 

제사상 차림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언니네 집에 간 박분례는 수면제를 음식에 넣었고 언니 가족들이 잠에 빠지자 촛불을 넘어뜨려 화재가 나도록 했다. 그리고 집을 나와 300m 떨어진 사촌 오빠네 집으로 가 태연히 잠을 잤다고 한다.

물론 이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계획이었지만 뜻밖의 변수가 생겼다.

조카들과 언니는 바로 사망을 했지만 형부가 바로 사망하지 않았던 것이다.

 

중풍끼가 있던 형부였기에 증언을 하기 힘들었고 박분례는 " 형부의 말을 저도 간신히 알아듣는다. " 라고 말하며 통역을 대신했고 이를 믿은 경찰은 단순화재로 사건을 종결시켰다고 한다. 지금보면 말이 안되겠지만 당시에는 그만큼 가족, 이웃간의 정이 상당했다. 박분례는 보험금 1,500만원을 수령하게 된다. 지금으로 환산하면 4억원에 해당되는 큰 돈이다.

 

 

 

1970년대 신세계 백화점

 

 

 

3. 유흥비로 돈을 탕진한 박분례, 동거남 가족으로 눈을 돌려

 

당시로는 매우 큰 돈이었지만 박분례는 백화점 쇼핑과 유흥비로 대부분의 돈을 탕진했다고 한다.

돈이 궁해진 박분례는 당시 동거를 하던 엄씨의 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70대도 정정한 나이지만 당시만 해도 70대는 고령이었다. 또한 당시 엄씨의 부친은 심장 상태가 썩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사실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다는 뜻이었다.

더불어 엄씨의 부친과 박분례는 사이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였다. 박분례가 이혼녀인데다 연상이었기 때문.

박분례는 음료에 독이 든 우유를 첨가해 살해하는데 성공한다.

흔한 음료였기에 사건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박분례는 의심을 받지 않고 유산을 몰래 빼돌려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내 걱정이 생겼다.

만약 자신이 유산을 빼돌려 사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이었다.

평소 몸이 허약한 동생을 걱정하던 동거남이 생각난 그녀는 사실상 시동생인 동거남의 동생을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거짓말로 시동생을 불러낸 박분례는 그를 살해하는데 성공한다.

 

 

 

 

 

 

 

4. 조카의 의심에 결국 덜미를 잡히다

 

완전범죄를 꿈궜지만 볌행의 덜미는 엉뚱한 곳에서 잡히게 됐다.

다 끝난 줄 알았던 범죄가 마침 군대를 전역한 조카를 통해 의심의 꼬리를 잡히게 된 것이다.

사고사로 알았던 조카는 보험금에 대해 알게 됐고 이를 박분례에게 추궁하게 된다. 자신의 가족이 가입도 안했던 보험을 박분례가 가입했기 때문, 문제는 이를 눈치 챈 사람이 조카만이 아니였다는데 있다.

 

사실상 시동생이나 다름없던 유가족들이 보험사 직원에게 보험금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사고인 줄만 알았던 사건인데 보험금이 무려 4,000만원이 넘게 지급됐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은 가족들은 박분례에게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결국 박분례는 범행 일체를 털어놓을 수 밖에 없게 됐다.

 

박분례는 1978년 사형이 선고됐고 대법원 확정을 거쳐 교도소에서 복역을 하다 1983년 7월 부산에서 사형이 집행됐다고 한다. 당시 그녀의 나이 57세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