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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의 삶

#. 살짝 이해하기 힘든 우리나라 가정문화

아마도 이게 일상적인 현상이자 문제일 듯 싶다. l 게티이미지

 

 

 

 

외국에서 거주 할 때 바라 본 가정의 문화와 한국에 와서 본 가정의 문화는 완전 다르다.

물론 요즘 결혼을 한 대부분의 젊은 부부들은 남여 구분없이 공동으로 가사 분담을 하거나 한 쪽이 업무로 바쁜 경우 혼자 가사를 전담하는 양분화가 잘 되어 있는 듯 하지만 종조 문제가 발생되는 이유를 보면 여성들의 아우성이 좀 더 많음을 알 수 있다. 분명 남편이 회사 일로 바빠 가사를 돕지 못하는 걸 이해하면서도 " 왜 나만 집안일을 해? " 라며 짜증을 내는 경우가 많다. 남편이 집안일을 하는 건 당연한데 아내가 집안일을 하는 걸 희생이라 생각한다.

 

많은 여성들이 이런 말을 한다.

"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야. " 라고 말이다. 이 말만 들어보면 마치 어머니들은 평생을 집안의 노예처럼 살아오신 듯 하다.

실제로 어머니들의 하루를 보면 그런 경우가 많다. 남편은 물론 자녀들, 종종 올라오는 시댁, 친정 식구들까지 모두 어머니의 차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럼 그런 삶을 원하셨을까.

정답은 아닐 것이다. 그 누구도 평생을 집안일만 하고 살고 싶진 않을 것이다. 다만 집안일 = 엄마 차지라는 공식은 당시 시대적 배경이 만든 사회상이다. 당시만 해도 남편은 직장, 아내는 집안일을 하는 것이 당연시되었으며 그게 미덕이었다.

이제 시대가 달라졌고 사회적인 룰이 달라졌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야? 엄마를 고생시킨 건 바로 당사자 본인

 

한 가지 안타까운 건 대부분 엄마가 고생했다는 걸 잘 알지만 그 고생을 시킨 당사자가 자신이라는 건 잘 모른다는 점이다.

여전히 엄마를 고생시킨 건 아빠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자녀가 태어나는 순간 엄마를 힘들게 하는 건 남편보다는 자식이 더 크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교 시절 밥먹고 설거지를 한 자녀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당연하게 아빠처럼 거실로 가 TV를 보거나 방으로 들어가 음악을 듣고 라디오나 친구와 통화, 메신저를 주고 받았을 것이다. 청소, 빨래도 엄마 차지이며 " 그 옷 빨았어? 왜 빨아? "라거나 " 왜 아직도 안 빨았어? "라고 해봤을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엄마에게 이것 저것을 지시하고 시켜대면서도 엄마를 고생시킨 건 아빠라고만 생각을 한다.

 

왜 그럴까.

자신(자녀)이 아빠, 엄마에게 받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에 MZ 세대들은 이런 말도 한다고 한다.

" 누가 낳으랬어? 자기들이 좋아서 낳아놓고는 왜 생색이야? " 라고 말이다. 이건 그냥 철이 없는 것이다.

부모도 자식을 선택해서 낳고 싶었을 것이다. 낳아보니 인성 쓰레기면 후회막급이라도 자식이니 갖다 버릴 수도, 내다 묻을 수도 없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철이 없다고 해도 이건 정도가 지나치다.

 

 

 

가사에 대한 교육은 어려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가사에 대한 교육은 어려서부터 이뤄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어린 시절에는 대부분 집안일에서 제외가 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심부름 정도는 아이들에게 전담시켰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자기 마음대로 변하는 것이다.

어려서도 안하던 집안일, 심부름을 커서 할 리는 만무하다. 오히려 반발이 심하다. 귀찮게 한다는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장남우선주의가 강했다.

일단 나이차가 얼마 나지 않아도 장남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조건 막내가 하는 게 당연했다.

용돈을 받아도 장남과의 차별이 존재했지만 어른이 되면 효도는 공동 분할이다.

대개 장남들은 부모님에 대해 크게 책임지기를 꺼려한다. 어려서부터 받는 것만 익숙하다 보니 베푸는 것에 인색한 경우가 많다. 설거지를 자녀에게 전담시킬 수는 없겠지만 자녀와 함께 집안일을 하는 것부터 익숙해지도록 교육하는 게 좋다.

 

그렇게 성장한 자녀는 집안일에 적극적이게 되고 부모가 자신을 얼마나 힘들게 키우는지, 고생하는지 알게 된다.

자연히 부모님과의 관계도 좋아지고 부모 자식간이 아닌 공동구성원으로 변하게 된다.

 

 

 

 

부모와 내 인생은 별개이지만 권리를 누리려면 책임도 함께 

 

부모를 희생시킨 건 자녀들이지, 그들 스스로가 자발적인 희생을 원한 게 아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한사랑을 베푸는 것은 자신의 핏줄이기도 하지만 책임의식이 크기 때문이다.

자신이 낳았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책임질 수 있는 것이다. 나이를 조금 먹고 이제 세상살이에 자신감이 좀 붙었다고 해서 " 부모는 부모, 나는 나 "를 외치는 건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부모 문제는 부모가 라고 외칠 것이라면 본인의 문제에 대해서도 본인 스스로가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내 부모님은 굉장히 특이한 교육관을 갖고 계셨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면 처음에는 다독여주셨지만 나중에는 " 가자. 가서 자퇴하고 당장 내일부터 나가서 구두를 닦던, 동냥을 하던 하자. " 라고 하셨다. 담배를 피거나 술을 마셔도 아무 말 안하셨다.

그러다 경찰에 걸리게 되면 " 처벌하셔야 한다. 부모라도 자식을 24시간 따라다닐 수 없다. 자식이 잘못했으니 부모로서 죄송하지만 법대로 해주셨으면 한다. "라고 해 오히려 경찰이 당황한 적도 있다.

어머니는 내게 그러셨다. " 세상에 자기 자식이 사랑스럽지 않은 부모는 없다. 하지만 자식의 인생은 자식이 선택할 수 밖에 없다. 부모는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이지, 인생을 대신 책임져주는 존재가 아니다. "라고 했다.

 

그게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스스로 겪어보고 책임을 짓는 법을 알게 해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라 하셨다.

나와 형도 성장과정에서는 사고도 많이 쳤고 경찰서도 몇 번 다녀왔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경찰이 미성년자라고 좋게 말하고 예의를 갖추던 때도 아니다. 경찰서에서 된통 혼나고 집에 오면 딱히 별 말씀은 안하셨다.

이미 혼나는 건 충분히 혼났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냥 묵묵히 밥을 차려주셨고 여느 때처럼 대해주셨다.

물론 좀 심한 경우에는 아버지께 불려가 된통 또 혼이 났지만.

어머니는 내게 그러셨다.

 

 


네 인생이니 대충 막 살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다만 부모로서 하나 조언을 한다면 나쁜 짓을 할 것이라면 아예 대차게 하길 바란다. 어설프게 하지 말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범죄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도 인정한다.

어설프게 하다 말 것이라면 아예 하지 않는 게 제일 좋다.

착한 일은 대충해도 착한 일이 되지만 나쁜 일은 대충해도 범죄가 된다. 그게 세상이다.

네가 세상 그 어떤 악랄한 범죄자가 된다해도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는 것만 알았으면 좋겠다.


 

 

 

바로 이게 어머니가 내게 가르쳐 준 책임에 대한 것이다.

뭘 하든, 어떻게 살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건 자신이라는 것.

감동 영상이나 짤에 눈물난다, 부모님 생각난다고 댓글 달 시간이 있다면 부모님께 안부 전화, 사랑한다는 메시지 정도는 남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보내고 싶어도,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