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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일이?

폰 시대의 시조격, 시티폰. 시티폰에 얽힌 추억

스마트폰은 이제 대중적이자 일상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1990년대에는 삐삐가 일상 필수품이었다. 삐삐가 유행이던 시절 사실 삐삐도 굉장히 혁신적이고 엄청난 삶의 편리함을 가져다 주었던 제품이 확실했었다. 집에서, 회사에서 전화를 받지 않으면 사실 어디에 있는지, 언제 연락이 될 지 알기 어렵던 시절에서 삐삐는 그야말로 혁신적이었다.

 

삐삐는 음성 메세지는 물론 숫자로 된 암호로 의사 소통이 가능했다. 물론 이야기를 주고 받으려면 공중 전화, 또는 커피숍 등 전화기가 있는 곳에서 가능은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매우 편리했던 게 사실이었다.

 

 

 

| 시티폰의 등장, 하지만 굵고 짦았던 폰의 혁명

 

시티폰 지면 광고, 시티폰의 등장은 일대 혁명이었고 삐삐의 몰락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물론 시티폰이 등장하기 전에 등장한 핸드폰이 있긴 했었다. 미국 모토로라에서 출시한 Micro TAC 모델이 그것이었다. 일명 "모토로라"로 통칭되어 불리던 폰으로 당시 미국에서 출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벽돌같은 모양과 비싼 통신료로 소위 사업을 한다는 분들이나 갖을 수 있었지만 당시로써는 "전화기를 들고 다녀?"라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이슈였다.

 

이때 등장한 게 "시티폰"이었다. 모토로라보다 작고 슬림했다. 가격도 저렴했고 통신료도 일반 전화와 비슷할 정도로 저렴해 광고만으로도 큰 화제를 모았던 제품이었다. 10초에 8원 정도의 통신료. 우와~

 

당시 업체들은 프로모션을 통해 시티폰을 홍보, 판매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특히 1원짜리 동전을 가지고 오면 선착순으로 시티폰을 준다는 광고를 하기도 했었다. 당시 어린 학생이던 나는 그 광고를 보고 집에 있던 1원짜리를 들고 직접 찾아간 적도 있었는데....그 곳으로 담임이 직접 찾아오기도 했었다.

물론 학교로 끌려가 죽도록 맞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당시 친구들을 만나면 늘 나오는 술자리 이야기 중 하나가 됐다.

 

 

시티폰 모델, 망할 수 밖에 없던 시기였다.

 

 

시티폰이 일대 화제를 모을 수 있던 건 맞지만 사실 시기적으로 운이 없던 제품이었다.

먼저 발신만 된다는 점, 공중전화 부스에서 100m 내에서만 이용이 가능하다는 점 등은 시티폰의 치명적 단점이었다. 시티폰이 어디서나 통화가 되려면 많은 기지국을 개설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막대한 것에 비해 발신만 되는 폰이기에 효율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는 당시 삐삐에 익숙한 사회상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이미 삐삐만으로도 충분히 소통이 되는만큼 발신만 되고 공중전화가 근처에 없으면 무용지물인 시티폰은 그리 매력적이지 못했다.

폼을 잡기엔 좋지만 딱 거기까지였던 셈이다.

 

또한 모토로라 출시 이후 대부분 회사들이 핸드폰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속속 더욱 저렴하고 심플한 폰들이 출시되기 시작했다. 시티폰이 시장에 진입하기에는 이미 경쟁력을 잃은 것이다.

이에 시티폰은 삐삐와 핸드폰의 교체기에 잠깐 등장한 오작교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 이제는 추억이 된 유물 - 시티폰 

 

그래도 가끔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지금은 폰으로 메일, 소통, 검색, 주문 등 못하는 게 거의 없게 됐지만 가끔 1990년대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지금보다 너그러운 사회 분위기, 인정 넘쳤던 그 시절이 말이다.

기술적으로는 풍요롭고 편리한 세상이 됐지만 점점 각박해지는 사회 분위기에서 시티폰이 그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