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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X파일

대구 지하철 참사, 2003년 2월 18일 오전에 발생한 끔찍한 악몽

 

끔찍했던 악몽 <대구지하철 참사>, 2003년 2월 18일 발생했다.

 

 

이 글은 당시 기사와 인터넷에서 본 글 등을 토대로 작성한 글임을 알립니다.

혹 사실과 다르거나 잘못 된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세계 3대 지하철 사고로도 잘 알려진 <대구지하철 참사>는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경 발생한다.

출근길에 나섰던 시민들이 대부분 희생됐으며 당시 운전 사령과 기관사들의 초동 대응 부실로 인해 인명 피해를 키웠다는 비난이 일었던 사건이기도 하다. < 대구 지하철 참사 >는 그만큼 대한민국이 위기나 재난 상황에서 얼마나 대응하는 방법이 부실하고 부족한지를 잘 보여준 끔찍한 기억이었다.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만큼 사고 상황에서 역무원들과 기관사, 그리고 통제실의 사령들의 즉각적인 보고와 사고 대처에 대한 메뉴얼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아직도 우리 나라는 이런 상황에서 허둥대는 면이 많으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듯 한데, 그 이유는 - 혹시 나중에 문제가 되면 책임을 지어야 하기 때문 -이다.

책임지기 싫어하는 자세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쳐 만연한 풍토로 볼 수 있다.

 

장애를 얻었다고 삶을 비관해 범죄를 저지른 사람, 그리고 운전사령과 기관사의 초동대처가 빚어냈던 끔찍한 기억 <대구 지하철 참사>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대구 지하철 방화범 김대한, 당시 56세로 2004년 지병 악화로 교도소 내에서 사망한다.

 

 

1. 자신의 처지를 비관, 동반 자살을 택한 방화범 김대한 

 

방화범은 당시 56세의 평범했던 일반인 김대한이었다. 그는 개인 택시 운전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2001년 뇌졸증으로 쓰러져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50대 중반의 어찌보면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장애 판정을 받게 됐으니 사실 그가 느꼈을 허망함, 분노 등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는 작은 통에 휘발유를 넣고 라이터 2개를 챙겨 당시 안심행 1079편 열차에 탑승한다. 당시 목격자에 의하면 김대한은 노약자석에 앉아 라이터를 켰고 이를 본 시민이 "왜 자꾸 불을 켜고 그래요?"라며 항의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시민의 짜증섞인 말투에 분노가 치밀었는지 김대한은 휘발유에 불을 붙이고는 이를 열차 바닥에 던졌다.

순식간에 불길이 번졌고 탑승했던 승객들이 옆 칸 등으로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때 기관실에서 화재에 대한 경고등이 켜졌다고 했지만 기관사는 오작동으로 판단, 운행을 지속했다고 한다.

 

 

 

 

사건 당시 대구 중앙로역 모습

 

 

2. 상황보고를 받고도 제대로 대응 방법 및 역 진입 금지 조치를 내리지 못한 통제실

 

사실 이때만 해도 제대로 상황 조치만 취했다면 열차만 조금 소실되고 끝났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중앙로역에 정차한 후에야 화재 사실을 감지한 기관사는 일부 승객들과 탈출을 했다. 그리고 이를 통제실에 알렸다. 하지만 당시 통제실의 운전 사령은 이 같은 일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몰랐던 듯 싶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중앙로역에 1080편 열차가 진입했다. 불이 붙었던 1079편과 나란히 정차한 1080편에 불길이 옮겨붙었고 당시 열차 내부 소재는 불이 잘 붙는 소재였기에 화재는 더욱 맹렬히 기세를 키울 수 있었다. 뒤늦게 상황이 심각함을 알게 된 통제실에서 역 진입 금지 내린다.

 

당황한 1080편 기관사는 열차 마스터 키를 빼고 탈출을 감행, 1080편의 출입문이 열리지 않았다.

물론 당시 비상 개폐 장치가 있긴 했지만 이를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승객은 없었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이에 대한 사용법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의견이 엇갈린다.

어린 시절 지하철을 탔던 나도 개폐장치의 위치와 사용법을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이 좌석 하단에 있기에 당시 긴박했던 상황과 연기로 인해 이를 찾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점은 당시 1080편에 철도 직원이 탑승해 있었고 직원의 도움으로 일부 승객들을 개폐장치를 열고 탈출할 수 있었다.

 

 

 

화재 당시 상황을 제대로 모르고 앉아있던 승객들, 이 사진을 찍은 분과 사진 속 분들은 모두 생존했다고 전해진다.

 

 

3. 기적의 사진으로 불리는 당시의 내부 사진, 목숨을 잃은 대부분의 희생자

 

"기적의 사진"으로 불리는 사진이 있다고 한다. 당시 내부에서 연기가 자욱한 상황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분이 있는데 이때 촬영자와 사진 속 승객들은 모두 생존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사진을 두고 기적의 사진이라 명명했다.

 

물론 행운으로 목숨을 건진 분들도 계셨지만 대부분의 승객 분들은 연기와 화재로 생을 달리하셨다.

총 사망자 192명, 실종 68명, 부상 150명 등 인명 피해가 무엇보다 컸다.

가장 분노했던 일은 방화범 김대한이었다. 정작 죽고자 했던 그는 구조돼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도중 경찰에 검거됐다. 이런 것을 보면 자살하려고 방화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정작 자신을 살아난다.

사실 죽고 싶은 마음보다는 분노를 그저 표출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것도 남을 향해.

 

이후 검거 된 김대한.

그의 아들은 경찰서에 출두해 "부친이 우울증 및 지병으로 정신에 문제가 있었다."라고 진술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두한은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됐으나 정신적인 질환이 있는 점 등이 인정돼 무기수로 감형돼 교도소에 수감됐고 이듬해 지병 악화로 사망했다.

 

 

 

당시 열차 내 승객들이 가족과 지인에게 보낸 문자 내용, 다시 한번 명복을 빌어본다.

 

 

4. 끔찍한 화재 속에서도 가족과 사랑하는 연인 등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 희생자들

 

대처 미흡, 기관사의 무책임, 그리고 정신병자의 악행 등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하루 아침에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들의 곁을 떠났다. 문자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많은 국민들이 다시 한번 눈물을 닦아야 했음은 물론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 미안함, 그리고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한 사람 등 희생자 분들은 대부분 마지막 순간이 왔음을 직감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별을 고했기 때문이다.

 

 

 

대구 중앙로역에는 추모관이 세워졌고 매년 희생자 분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고 한다.

 

 

5. 다시는 벌어져선 안 될 참사, 또한 국민들에게 안전불감증에 대해 알려준 사건

 

대구 지하철 참사로 인해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다. 열차 내부 소재는 모두 화재에 강한 소재로 교체되었고 방화문, 보고 체계가 개선되었다. 또한 대구 중앙로역에 당시의 물품, 사진 등을 전시하고 이를 교훈삼아 재발 방지에 힘을 쏟고 있다고 하며 매년 희생자 분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고 한다.

 

2003년 벌어진 <대구 지하철 참사>는 다시는 이 땅에 벌어져서는 안 될, 아니 지구 어딘가에서도 발생되어선 안 될 비극이다. 최근 자신만 소중히 여기는 풍토가 또 만연해지고 분노 조절 장애가 많이 발생되고 있는데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타인을 공격하거나 희생시키는 미친 짓은 안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