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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슈

삼성 '이건희'회장 별세, 삼성의 별이 지다.

 

이건희 = 삼성으로 인식될만큼 삼성의 역사였던 이건희 회장이 25일 사망했다. 향년 78세

 

 

향년 78세.

100세 시대라는 말이 있는 요즘으로 치면 오래 산 것도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그의 삶을 보면 많은 굴곡과 기업인, 경영인으로써 성공도 많았지만 아픔도 많은 인물이었던 것 같다.

삼성이 대한민국 경제에 이바지하는 기여도가 큰만큼 삼성의 주인은 곧 '대한민국 최고 갑부'라는 타이틀이나 다름없다.

많은 사람들이 삼성을 비난하지만 사실 삼성이 있기에 그리고 삼성이었기에 이룬 세계적인 업적이 꽤나 있음은 부인할 수 없으며 삼성이 만약 부도가 난다면 대한민국 경제는 사실상 붕괴나 다름없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욕은 하지만 망하지 않았으면 하는 기업이 바로 "삼성"이다.

 

 

아버지 故 이병철 명예회장과 어린 이건희 회장, 1987년 삼성 회장으로 취임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 모습 / 인터넷

 

 

삼성의 3남으로 형제들을 물리치고 삼성 왕좌에 오르다, 반도체와 AS에 초점을 둔 이건희

 

사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아들이긴 했지만 후계구도에서는 가능성이 상당히 낮았던 아들이었다. 큰형 故이맹희 (2015년 별세), 둘째형 故이창희 (1991년 별세)에 이어 3남이었기 때문이다. 대개 가업과 집안의 서열을 장남이 이어받는 상황에서 3남인 이건희가 삼성가의 주인이 될 수는 없었다. 원래 이맹희 회장이 삼성의 2대 회장이었으며 사실 잠시나마 회장직을 수행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 '사카린 밀수사건'과 각종 논란에 연루되면서 정부의 책임 소재 압박과 삼성의 강제 수사로 인해 이맹희 회장이 물러날 수 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동생 이창희 회장도 법적 처벌을 받게 되면서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3남인 이건희를 불러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대개 그룹의 왕좌에 오르기 위해 형제들과 처절한 권력 싸움을 하는 여느 재벌가의 왕자의 난에 비해 삼성의 왕좌는 그렇게 잡음은 있었지만 이건희 회장에게 쉽게 건네졌던 것이다. 물론 창업주 명에회장도 일찍이 이건희 회장의 사업기질을 눈여겨봤던 점도 그 원인 중 하나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오늘의 삼성을 만든 인물이며 실질적으로 삼성의 모든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1980년대 미국과 일본의 엄청난 경제 성장을 눈여겨보며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가 삼성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판단, 주위의 우려와 반대에도 반도체 생산과 개발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창업주 이병철 회장 역시 그런 이건희를 질책했을 정도로 당시에는 "미친 짓"으로 볼 수 밖에는 없는 일이었지만 이건희 회장은 이를 증명해냈다.

 

또한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A/S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라."는 프랑크푸루트 선언의 주요 내용은 당시 럭키, 금성으로 삼성과 국내 기업 1,2위를 다투던 LG와의 격차를 벌리는 계기가 됐다.

당시 LG는 신제품 개발에 주력을, 삼성은 A/S에 주력을 하게 됐는데 경제 호황기였기는 하지만 너무 비싼 신제품이 대중들의 구매력을 이끌지 못했고 오히려 제품을 잘 고쳐쓰자는 인식이 강해 이러한 삼성의 선견지명이 들어맞은 것이었다.

이렇게 1980~90년대의 삼성은 대중들의 원하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며 전략을 구사해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하게 됐다. 이는 지금도 삼성과 이건희를 평가할 때 꼭 나오는 일화로 많이 알려졌다.

 

 

 

이건희 회장의 직계 가족. 홍라희 여사와 장남 이재용, 장녀 이부진, 차녀 이서현과 막내 故이윤형

 

 

"자식 농사만큼은 뜻대로 안되는구나." 이건희 회장의 가족들, 그리고 막내를 잃은 슬픔

 

미래 시장을 내다보는 안목과 분석력, 그리고 과감한 결단과 실행력을 갖춘 이건희 회장이었지만 그 역시도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인 적이 많았다고 한다. 물론 이재용 부회장은 "무뚝뚝하고 어려운 아버지"로 기억할 수 있겠지만 딸들에게만큼은 그냥 아버지였던 듯 하다.

특히 1979년생인 막내 故 이윤형이 미국 유학 중 자살했다는 기사는 당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특필될 정도로 유명했다. 이윤형의 경우 삼성가의 막내딸로 털털하고 검소했으며 겸손한 성격이었다고 알려졌었다.

재벌가의 막내지만 가족사를 종종 언급하고 대중들과 소통하는 등 일반 20대의 발랄함을 선보여 집안에서도 곤란했던 적이 있었다는 후문이 있지만 그로인해 "삼성이 조금은 인간적인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준 것도 사실이다.

 

이윤형이 사망했을 때 이건희 회장은 당시 매우 슬퍼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너무 슬피 우는 이건희 회장을 본 주위 관계자들이 "그냥 아버지의 모습"이라고 측은해 할 정도였다고 하는데, 아무리 재벌 회장이라도 자기 자식이 죽었는데 슬프지 않을리가 있을까. 

 

또한 1999년 장녀 이부진과 삼성 평사원 임우재의 결혼 이야기도 엄청난 화제를 불러모았었다. 당시 이부진은 전무였으며 임우재는 사원에 불과했던 것. 하지만 봉사활동 등을 함께 하며 호감을 느낀 이부진 당시 전무가 적극적으로 구애를 했고 결혼을 하게 됐는데, 당시 이건희 회장은 이를 반대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부진 전무는 단식투쟁도 불사했으며 아버지 이건희를 설득한 끝에 결혼 승락을 받아내 더 화제를 모았다.

실제로 이부진 현 호텔신라 대표는 기업가 면으로도 아버지 이건희에 뒤지지 않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선행도 많이 하는 인간적인 면으로 대중들에게 호감형 재벌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건희 회장에게는 부인 홍라희 여사와 장남 이재용 부회장, 그리고 장녀 이부진, 차녀 이서현, 故 이윤형이 가족이다.

형제들과는 거의 연락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을 세계 속에 널리 알린 故 이건희 회장,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기업인으로 비난과 찬사를 모두 받았던 이건희 회장

 

비록 대한민국 최고 재벌, 기업인으로 후계자 문제, 상속 문제 등으로 대중들에게 비난을 많이 받기도 했던 고인이지만 그가 생전 가업인 삼성과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기여한 점은 분명 존중받아야 하고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은 후계자 승계에 대해 "왜 전문 경영인을 두지 않느냐", "왜 노조를 인정하지 않느냐"며 비난하지만 사실 이는 그리 주관적으로 볼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원래 삼성은 창업 당시부터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기업 원칙이었다. 따라서 노조를 배척하는 게 아니라 기업 운영의 핵심 배경 자체가 다른 기업과는 달랐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한때 삼성이 선언했던 천재론과 LG가 선언했던 육성론은 두 대기업간의 신념으로 맞부딪혔다.

 

이건희 회장은 "인재가 곧 미래다."라는 당시 회장들의 생각과 같은 행보를 걸었지만 "1,2명의 천재가 10만명, 20만명을 이끌 수 있다."는 이른바 천재론을 언급했고 이를 신념으로 여겼다. 일부 언론에서는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이를 비난했지만 사실 이는 잘못 알려진 해석이다. 고인의 천재론은 사실 LG의 육성론과 그 배경이 같다.

뛰어난 리더가 냉정하고 철저한 분석을 통해 기업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위기를 해결하는데 필요하다는 원칙이다. 이는 LG가 제창했던 육성론과도 비슷한 개념이다. 다만 삼성의 탄생 배경이 워낙 당시 사업적으로 걸출했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나 이건희 회장 등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래. 너 잘났다."라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삼성 그룹은 과감한 투자와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세계 속의 삼성이라는 인식을 널리 심었다.

이제 많은 해외 국가 어디에서도 삼성의 로고와 간판, 제품을 만날 수 있고 또 뛰어난 성능에 "한국의 우수한 대기업"이라는 평을 받고 있으며 이는 곧 한국의 국가 브랜드와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됐음은 분명 사실이다.

 

이건희 회장이 2004년부터 건강 악화로 "사실 사망했는데 경영 승계때문에 이를 숨기고 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었다.

또한 박근혜 정부 시정 비선실세 연루설에 휘말려 이재용 부회장이 수감, 고초를 겪기도 했고 비난이 많이 일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물론 유한양행처럼 좋은 선례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기업이 그리 할 수는 없다고 본다. 더불어 많은 서민들도 세금을 덜 내기 위해, 재산을 증식하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재벌들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단지 그들의 재산이 더 많기에 편법상의 수치도 더 높을 뿐, 사실 우리네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누가 자신의 할아버지가 만들고 아버지가 일군 기업을 남에게 쉽게 주라고 할 수 있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본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너도 네 힘으로 집을 사거라."하면서 자신의 집을 처분, 사회에 기부한다고 하면 "네. 아버지."라고 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솔직히 말하면 그냥 배가 아픈 것이다. 나도 부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삼성이 크게 잘못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들 나름대로의 리그가 존재하고 그들은 그들이 속한 세계에서 그 룰대로 움직일 뿐이다.

우리같은 서민들의 삶과는 원칙, 개념, 상식이 다르다는 말이다. 분명한 건 재벌들이 준법 정신이 뛰어나고 훌륭한 인품을 갖추진 못했지만 그들이 있기에 많은 일자리가 제공되고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뛰어난 기업인으로, 삼성의 작은 거인으로 기억 될 故 이건희 회장. 그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 삼성의 별이 지다

 

정부는 이건희 회장 별세로 인해 상속세를 부과할 방침이라고 한다. 주식만 놓고 본다면 약 19조에 조금 못 미치는데 세금만 무려 10조 6,000억원이라고 한다. 물론 이는 국가가 정한 법률에 따라 정당하게 계산 된 금액이지만 네티즌들은 정부의 이런 세칙에 "과하다."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혈세 낭비하는 지자체, 국회의원들의 관행은 개선하지 않으면서 개인이 이룬 재산에 대해 과도한 세금비율을 책정한다는 게 일반적인 내용이다. 그런 면에서 정부는 욕을 먹어도 싸다고 본다.

국가 차원에서 특별히 해주는 것도 없음에도 애써 이룬 재산에 대해 세금을 걷어가는 정부는 사실 반성해야 한다.

 

아무튼 삼성의 작은 거인, 별이던 이건희 회장은 2020년 10월 25일 78세의 일기로 공식 사망했다.

50년이 넘는 시간을 삼성이라는 기업을 크게, 뛰어나게, 우수하게 만든 그 공로는 정말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뒤를 이을 이재용 회장 역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삼성을 더 큰 기업, 세계 속에 절대 무너지지 않을 우수한 그룹으로 성장시켜주길 바라본다.

 

이건희 회장님. 그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