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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 사망, 쓸쓸한 죽음도 위로받지 못한 죗값

김기덕 감독이 지난 12월 11일 라트비아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곽경택, 봉준호, 김기덕.. 이름만 들어오 "아~"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한국 영화계를 이끌고 있던 감독들 중 김기덕은 꽤나 유명한 감독이다. Gimgideok Film 의 대표이기도 한 김기덕 감독은 지난 2017~18년에 불거진 미투 논란에 휩싸여 거의 사실상 활동을 중단한 상태였다.

여배우의 뺨을 때린 폭력에 대해서는 벌금이, 그리고 성폭행 등 미투에 관련되어서는 무혐의를 받으면서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10억에 달하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 항소를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투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그의 감독 인생은 사실상 국내에서는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그의 작품에 자주 출연했던 주연 배우 조재현도 같이 연루되면서 조재현은 연예계 은퇴 및 현재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아예 잠적을 한 상태로 대한민국 연예계와 영화계에서 김기덕 감독은 사실상 혐의를 인정 받은 것과 다름없는 신세였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故 김기덕 감독의 작품들

 

 

독학으로 이룬 영화 감독의 꿈

 

1960년 경북 봉화 출신으로 감독은 제대로 된 교육은 거의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병대 부사관으로 군 복무를 했고 직장 생활도 조금 했지만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 미술을 공부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과정에서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 1996년 첫 영화 <악어>를 내놓는다.

이후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와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으며, 2011년에는 <아리랑>으로 칸 국제 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 시선상을, 2012년에는 <피에타>로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기도 했다.

 

이미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 감독이었다. 그의 영화를 보면 영상미가 상당히 뛰어난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한때 미술을 공부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튼 꽤나 독특하고 재능이 뛰어난 감독이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김기덕 감독이 라트비아 북부에 위치한 유르말라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12월 11일 라트비아에서 사망, 코로나19로 인한...유족들 대사관에 장례 위임 의사 전달

 

국내의 차가운 시선 때문인지 그는 발트3국 중 한 곳인 라트비아의 북부 도시 유르말라에 정착한 듯 했다. 이미 그 곳에 집을 구입해 영주권 취득도 고려한 듯 보였다. 그는 지난 11월 라트비아로 출국했고 라트비아 도착 5일만에 현지 지인들과 연락이 두절돼 찾던 도중 그의 사망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김기덕 감독은 최근 코로나19 증세가 있어 병원에 입원을 했고 입원 이틀만에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유족들은 코로나19로 인해 라트비아로 출국이 편치 않은 점 등을 이유로 대사관에 장례 절차 등을 위임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화장 후 그의 시신이 돌아올 것이라는 예측이 돌고 있다.

한편 한때 대한민국 영화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거장이지만 그의 죽음에 한국 영화계는 딱히 애도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한다.

 

일부 영화계 인사들은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기도 했지만 대다수의 관계자들은 "고인이 한국 영화계에 헌신한 점은 사실이지만 부도덕한 성추문 의혹이 제기됐던 만큼 고인에 대한 이미지가 예전같지는 않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지난 2018년 미투 논란에 배우 조재현과 함께 거론 된 김기덕 감독

 

 

비록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를 인정받았지만 사실 방송, 영화계는 한때 지독할 정도로 열악하고 감독이나 PD들이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무소불위의 영역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특히 해외에서 인정까지 받은 감독이라면 그의 입김만으로도 주연이 될 수도, 영원히 영화계에서 퇴출까지도 당할 수 있는 만큼 증거는 없지만 그가 많은 여배우들을 상대로 부도덕한 행위를 했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 지금 대중들의 시선이다.

 

또한 실제 행위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하더라도 감독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여배우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언행을 했다는 의혹만으로도 그에게는 치명적인 이미지 추락이라고 볼 수 있다.고인이 라트비아라는 잘 알려지지도 않은 국가까지 가서 집을 구매하고 영주권을 획득하려고 준비했다는 것만 보아도 이미 고인은 "한국에서 더 이상의 활동을 하기란 무리이다."라는 판단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감독적 재능은 뛰어났지만 인격까지 뛰어나진 못했다.

 

 

| 감독으로 재능은 훌륭했지만 인격까지는 훌륭하지 못한...이제 그 곳에서 영면하시길

 

죄가 없다고 법원이 판단을 했고 그래도 한때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인 그의 죽음을 두고 "잘 죽었다."라고는 할 수 없을 듯 하다. 하지만 그 자신도 어려운 환경에서 피나는 노력으로 오늘 날의 자리까지 오른만큼 어려운 환경에서 배우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배우들을 조금만 잘 대해줬더라면 아마 그의 죽음에 이런 차가운 시선들이 있었을까.

그래도 한때는 그의 영화를 감상했던 관객의 한 사람으로써 예전에는 순수한 열정으로 영화 제작에 노력했을 그의 노력을 기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