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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시작은 정치판부터

노태우 향년 88세 사망, 불명예 대통령의 마지막 길.

대한민국 제 13대 대통령을 지낸 故노태우씨. 그는 전두환과 같은 길을 걸었지만 마지막 길은 다른 길을 택했다.

 

 

향년 88세. 우리나라 나이로 90세인 노태우씨가 사망했다고 한다.

노태우는 13대 대통령으로 1988년~93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했었다. 군인 출신으로 육사 동기였던 전두환과 함께 하나회를 조직,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거머쥐는데 성공했다.

 

동기였지만 1살 형이던 전두환과 호형호제를 했으며 전두환이 11대~12대 대통령직을, 노태우가 정권을 이양(?)받아 13대 대통령을 수행했다. 일각에서는 전두환이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는 설도 있는데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 설을 굳게 믿고 있다.

 

 

 

육사 출신으로 전두환과 함께 하나회 핵심이던 故노태우

 

 

성공한 쿠데타는 죄를 묻지 않는다 했었는데...成卽君王 敗卽逆賊 (성즉군왕, 패즉역적)의 사례

 

옛 말에 成卽君王 敗卽逆賊 (성즉군왕, 패즉역적)이라는 말이 있다.

성공하면 군왕이요, 실패하면 역적이라는 뜻으로 '성공한 쿠데타는 죄를 묻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1212사태로 정권을 잡은 이들은 1996년 8월 26일 나란히 1심 선고공판에 서게 됐다. 여기서 전두환은 군사반란과 내란수괴, 내란목적살인, 뇌물수수 등 10가지 혐의로 사형을, 노태우는 군사반란과 내란중요임무종사, 뇌물수수 등 9가지 혐의로 징역 22년 6개월과 추징금을 선고 받기도 했다.

 

전대와 후대 대통령 모두가 법정에 서게 되는 초유의 사태로 당시 국민들은 이같은 법원의 결정에 환호를 보냈다.

당시 대통령이던 故김영삼 대통령은 이들에 대한 사면을 탐탁찮게 여겼다고 한다. 워낙 지은 죄가 큰데다 국민 정서에 반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대권 후보였던 故김대중, 이회창 등은 대국민 화합이라는 명목으로 사면을 추진했고 결국 故김영삼 대통령과 합의를 하기에 이른다.

 

당시 故김영삼 대통령은 "내 임기 내에서는 절대 사면을 해선 안된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결국 이들은 김대중 정권에 들어서야 사면이 진행됐다.

 

 

 

같은 길을 걸었지만 마지막엔 다른 길을 걷게 된 두 사람. 아들을 시켜서라도 대신 사죄 올린 노태우.

 

국가전복죄로 인해 사형까지 선고받았던 그들, 노태우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초청 행사를 끝으로 공식활동을 자제해왔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실과 바늘처럼 명콤비같은 이미지였다. 그만큼 사이도 좋았고 많은 부분에서 서로의 이익을 위해 애써왔다. 하지만 수감 이후 둘의 행보는 조금씩 달라졌다.

정치적 행보나 언행을 삼가하며 조용히 지내던 노태우와는 달리 전두환은 좋든 싫든 꾸준히 언론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추징금을 모두 완납한 노태우와 달리 아직도 전두환의 추징금은 상당수 남아있다고 한다.

 

노태우는 2004년 故노무현 정권 시절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다시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는데 건강악화설이 가장 유력했었다. 또한 말년에는 가족들은 물론 측근들에게조차 "사과해야 한다."라며 지난 날을 반성하는 듯한 발언을 자주 해왔었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2019년 부친의 뜻에 따라 5.18묘지에 나타난 아들 노재헌씨, 그는 사과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마치 삶이 머지 않아 끝남을 알기라도 하듯 그는 아들을 시켜 5.18 희생자 묘지를 찾아 대신 사죄를 올리도록 했다. 아들 노재헌씨는 아버지를 대신해 묘지를 찾아 희생자들을 향해 절을 올리며 대신 사죄를 올렸다.

 

노태우. 그는 대한민국 역사상 큰 죄를 지은 대통령이자 군인이었다.

그러나 그도 끝내는 한 명의 사람이었으며 10년이 넘는 세월을 병상에서 보내며 참회를 했을 것이다. 물론 그 참회의 순간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할 수 있을까만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