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거기어때?

손기정 기념관 | 손기정옹 탄생 110주년에 기념관에 가보다

손기정 기념관, 손기정 기념 체육공원 내에 위치해있다. 2층 건물로 아담하고 아름다운 건물이다.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있지만 대한민국 최초의 금메달리스트, 마라토너의 전설은 바로 故손기정 옹일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일제강점기로 선생께서는 일본 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할 수 밖에 없었다. 세계신기록을 세웠지만 조선인으로 자랑스러운 국호와 애국가를 들을 수 없었던 선생은 살아생전 그것을 가장 원통해하시다 2002년 90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고인과 함께 베를린 올림픽의 메달을 획득했지만 "일장기를 가리지 못해 그것이 가장 부끄럽고 손기정이 부러웠다."고 말했던 故남승룡 선생은 2001년 타계했다.

기념관이지만 나라 잃은 슬픔을 더 느낄 수 밖에 없는 기념관이다.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당당히 월계관을 쓴 故손기정 선수, 3위를 한 故남승룡 선수의 모습

 

 

아마 한국인으로는 최초의 국제무대가 아니였을까 한다.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1936년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 된 올림픽에서 마라톤 부문에 손기정과 남승룡 선생이 출전했다.

1위를 차지한 손기정 선수는 당시 2시간 29분 19초라는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고 남승룡 선수는 3위를 차지해 동메달을 획득했다. 첫 출전한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의 획득은 엄청난 쾌거였을 것이다.

 

하지만 두 마라톤의 영웅들은 웃을 수 없었다.

조선인으로 당당하게 조선의 국호와 애국가가 아닌 일장기를 가슴에 지녀야 했기 때문이다.

손기정 선수를 수여받은 화분을 가슴으로 끌어올려 교모히 일장기를 가릴 수 있었지만 3위를 한 남승룡 선수는 일장기를 가릴 수 없었다. 이때 남승룡 선생께서는 손기정 선수가 그렇게 부러웠다고 한다.

금메달과 세계 신기록이 부러운 게 아니라 일장기를 가릴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고 말했었다고 한다.

 

비록 일제의 국기를 달고 출전했지만 그래도 선수의 혼과 피는 조선, 우리 한국의 핏줄이었기 때문에 정말 자랑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잊혀진 체육인이 아닌 자랑스러운 마라토너로 기억해야겠다

 

1층에는 두 곳의 전시관이 있다.

 

 

전시실은 1층에 두 곳으로 2층은 굳이 올라가보지 않았다.

원래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근처에 들렀다가 돌아가는 길에 기념관이 있기에 들러본 것이다.

전시실은 트랙으로 꾸며져 있었고 마침 부채 나눔 이벤트 중이라 직원 분께서 부채를 하나 가져다 주셨다.

( 에어컨은 있었지만 바람은 나오지 않았다. )

 

 

故손기정옹께서 사용하던 물품과 각종 메달 등이 전시되어 있다.

 

 

손기정 선생의 일대기를 전시해 둔 곳이다. 평소 사용하던 신발이나 물품, 그리고 대회에서 수상한 메달과 기념품들이 있었다. 굉장히 오래됐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막상 가서 본 물품들은 그 상태가 매우 깨끗했다.

아마 일부는 새로 만들어 둔 것이고 일부는 잘 보존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지인이 선생에게 보낸 편지 같은 것들도 있었는데 종이의 질이나 펜의 모양 등이 깨끗하고 종이 역시 빛이 바라지 않은 걸 보면 새로 작성 되어 전시한 것 같다.

 

 

'옹'이라는 호칭

 

故손기정 선수에게는 평소 '옹'이라는 호칭이 붙었다.

옹이라는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평소에는 잘 몰랐었다. 찾아보니 - 위대한 업적을 쌓았거나 의미있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사람에게 붙이는 칭호 - 라고 한다. 선생께서는 한국인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이고 세계신기록을 달성한만큼 '옹'이라는 호칭을 붙여 그 업적을 기렸던 것이다.

 

 

나라 잃은 슬픔을 가장 크게 느꼈을 故손기정옹, 그의 한 많은 인생이 녹아있는 듯 하다.

 

 

| 불운했던 시기도 분명 우리의 역사 중 하나

 

손기정 기념관이지만 남승룡 선생의 업적도 함께 전시됐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물론 일부 있겠지만 당시 올림픽에 나가 동메달을 획득한 것도 엄청난 성과이기 때문이다. 이때 일본 선수들도 출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조선의 두 명의 마라토너가 모두 시상대에 올랐으니 당시 일제가 얼마나 분노했을지는 잘 알 듯 하다.

지금도 베를린 올림픽 경기장에는 선생의 이름과 함께 '일본'이라는 국가명이 박제되어 있다고 한다.

선생께서는 훗날 이 일본을 한국으로 변경하고자 노력했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식민지 시대도 일종의 당시 시대상이었기 때문에 불가하다는 판결을 받을 걸로 안다.

 

선생께서는 그 후에도 올림픽 영웅으로 예우받으며 각종 국가 행사에 초청되었고 아시안게임과 서울 올림픽, 그리고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지켜보시다 2002년 영면에 들었으니 그래도 한 맺힌 인생사를 보낸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라 잃은 백성들에게 올림픽 메달을 선사해 희망을 주었던 선생의 노고에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표한다.

 

 

 

공영 주차장, 비용은 저렴하지만 불편한 구조이다. 2층은 여성 전용인듯 하다. 표지라도 세워놓던가....

 

주차는 기념관 아래 공영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하지만 주차대수가 많은 편은 아니고 2층은 여성 전용으로 구성되어 있어 지하 1,2 층을 이용해야 한다.

모르고 2층으로 올라갔다가 빠져나오는데 좀 힘들었다. ( 출차 통로가 하나임 )

좀 지을 때 넉넉하고 넓게 좀 만들지...주차료가 저렴해 참았다. / 10분당 150원으로 알고 있음.

 

 

 

 

※ 기념관은 무료 관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