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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어때?

양주관아지 | 조선시대 관아의 품격을 볼 수 있는 곳

밤에 가 본 경기도 양주의 명소 < 양주관아지 >

 

 

6일밤. 퇴근 후 집에 도착해 바로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원래는 양주시청을 방향으로 더 가보려고 했으나 밤공기도 싸늘하고 차량 이동에 방해가 되는 듯 하여 부득이 진로를 백석쪽으로 돌렸다. 

 

확실히 의정부 - 양주 방면은 밤 9시만 돼도 도로에 차량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아직까지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인 듯하여 좋을 때도 있지만 불편할 때도 있다. 얼마쯤 가다보니 <양주관아지>라는 문화재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밤 9시가 다 된 시각이라 주위는 한적했고 고요했다. 하지만 멀리서도 보이는 화려한 조명이 감싸고 있는 고택 건물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조선 시대 관아의 품격 - 양주관아지

 

관아는 지금으로치면 구청에 속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또는 바로 목사로 지방의 행정 수령이다.

마을의 행정을 관장하고 필요에 따라 재판도 하는 곳이 바로 관아이다.

현재의 위치에 양주목이 설치된 것은 1506년 중종 1년때이며 1922년 고종 황제 시절 시둔면, 지금의 의정부 1동으로 이전될 때까지 약 417년간 양주를 다스리던 관청이다.

이후 일제 강점기 시설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다 한국전쟁 때 파괴되어 복구하지 못했다.

 

1999년 4월 경기도 기념물로 등록되었고 2000년 ~ 2017년까지 5회에 걸쳐 발굴 조사 작업이 이루어져 각종 유물과 터 등을 파악했으며 옛 기록의 고증과 터의 위치 등을 근거로 복원, 오늘에 이르렀다.

한 마디로 건물은 복원되었지만 위치는 조선 시대 그대로라는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전국 팔도에 약 20곳의 목들이 존재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양주목 (양주관아)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규모와 건물의 웅장함이 남다르다.

밤이라 내부로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양주관아에는 어사대비라는 비가 있다고 한다.

1792년 정조 대왕이 친히 양주목에 행차하여 3일간 머물렀고 이때 활을 쏜 장소를 기념해 세운 비라고 한다.

 

 

관아 옆으로 양주목사의 가족들이 기거했던 또 다른 장원이 있다.

 

 

| 옛 문화재 등을 보면.

 

나는 옛 유적이나 문화재등을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또 이것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비록 복원 된 문화재지만 설립 당시의 구조, 위치 등은 그대로이니 과거 조선시대 사람들은 과연 이 관아를 보며 어떤 희노애락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오늘부터 3일간의 연휴가 시작되니 토요일 낮에는 양주관아지를 다시 가 볼 생각이다.

밤에 본 양주관아는 매우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그렇다면 낮에 본 양주관아는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가본 김에 향교도 구경하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