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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물질 생활

#12. 수조 탈출했던 가재...결국 용궁으로 가다.

금요일까지만 해도 멀쩡히 수조를 활보했던 녀석

 

 

녀석이 집에 온 지 2개월이 지났다.

오자마자 탈피를 하고 잘 먹고 잘 돌아다니던 녀석이다. 종종 밥 달라고 수조 유리면에 붙어서 집게발을 활짝 벌리고 애교를 부리던 1521이었다.

 

지난 주. 자고 일어나니 녀석이 수조에 안 보였다.

" 어디갔지? "하고 어리둥절해 있는데 마루 바닥에서 슬금 슬금 다가오던 녀석이었다.

얼른 수조로 넣어주니 탈출을 반성하는 듯 한동안은 또 수조 위로 기어오르지 않았다. 수조 높이도 높이지만 수조를 올려둔 선반 역시 바닥에서 높이가 상당해 부러진 곳이 없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이번 주에는 출근할 때 늘 커버를 올려놓고 나갔다. 퇴근 후 잠깐 내려놓다가 잘 때 또 커버를 올려두었다.

자는 동안 나올지도 모르니까.

 

 

뜻밖의 외박, 사라진 가재

 

집에와서 보니 수조에 녀석이 안 보였다. 또 탈출한 것이다.

 

 

어제 형네 집에 가서 모처럼 형과 술 한잔을 하고 자고 왔다.

1521이 좀 걱정은 됐지만 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지난 주에 그 고생을 했을테니 또 나오진 않겠지..."라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말 못하는 생물이라도 자기도 생존에 대한 생각은 있을테니.

 

집에 오자마자 수조를 살폈다. 가재가 안 보였다.

쇼파 밑, 가구 밑 등을 샅샅히 살폈다. 발코니도 가보고 커튼 뒤도 열어보았다. 안 보였다.

아무리 볼케이노 가재가 고가의 가재가 아니더라도 2개월간 키운 정이 있는데 걱정이 됐다. 밖에서 오래 못 버틸텐데...

그나마 여름이 아니라 더 생존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1시간을 찾다 포기했다.

가재 찾자고 온 가구를 다 끄집어 볼 수도 없으니 말이다.

 

 

방금 발코니 매트에 매달린 채 죽어있는 녀석을 발견했다.

 

 

| PM 20 : 15분, 발코니 매트에 매달린 채 죽어있던 녀석을 발견하다

 

주위가 어두워졌으니 혹시 나타났을까 싶어 거실로 나갔다. 역시 수조 근처에는 없다.

방으로 들어오려다 문득 발코니 쪽을 바라보니 무언가 횐 물체가 보였다. 혹시나 싶어 가보니 발코니 매트 벽면에 매달린 녀석이 보였다. 아까 낮에는 없었던...그 곳이었다. 아마 발코니 어딘가 구석 틈에 있다가 간 모양이다.

혹시 살았을까 싶어 만져보니 미동도 하지 않는다.

 

조금만 더 빨리 나타났더라면....

다음에는 수조에 커버를 꼭 닫고 키워야겠다. 처음 503호는 수온 조절 실패로 3주만에 용궁으로 보내고 이번 1521은 탈출을 막지 못해 보내고....가재 키우기가 쉽다고 하더니 은근 어렵다.

그래도 살아있는 생물이 죽었으니 마음은 씁쓸하다. 더 오래 오래 같이 지내고 싶었는데....

안녕. 1521....잘 돌봐주지 못해 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