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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 그가 대통령이 됐더라면 IMF는 없었을 것." - 아산 故정주영

한국 기업사의 전설 중 한 분이신 아산 故정주영 / 1915 ~ 2001

 

 

IMF가 끝난 지도 어느덧 약 22년이 지났다.

지금에 와서야 또 한번 재평가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한국 기업사의 전설이었던 아산 故정주영이다.

1915년 강원도 통천에서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장남에게 훌륭한 농부로 집안의 기둥이 되길 바랐으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꿈이 있었고 열정이 있었다.

 

1940년대 초 일제강점기 시절 정주영은 당시 자동차 정비 서비스업체 아도서비스를 인수해 현대 자동차의 전신으로 삼았다. 그리고 1950년대 한국전쟁은 정주영에게는 또 다른 사업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정주영은 미군을 상대로 온갖 발주 사업을 따냈으며 전쟁으로 파괴 된 사회 시설 복구 작업에 뛰어들어 회사를 급성장 시켜나갔던 입지적인 인물이다.

 

 

젊은 시절 상공인들과 함께

 

 

기업인 정주영, " 해봤어?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는거야. "

 

정주영은 기업인으로는 가히 전설적 인물이다. 잠을 하루 4시간 정도만 잤으며 늘 제일 먼저 현장으로 출근하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또한 정주영은 온 가족이 다 같이 식사를 하는 가풍을 만들어 가족들이 많이 힘들어했었다고 한다.

일찍 일어나는 그에게 맞추자니 고역이었을 것이다.

 

정주영의 일대기를 보면 그는 도전과 열정, 패기를 갖춘 인물이다.

본 적도 없고 해보지도 않은 일이라도 그는 늘 도전했고 시도했다. 막연하게 "어떻게든 되겠지."가 아니라 "어떻게든 되게 만드는" 사람이었던 듯 하다. 정주영은 생전에 일이나 업무에 대해 핑계를 대면 " 해봤어? 해보고 말하는 거야? "라고 타박을 했다고 한다. 해보지도 않고 못한다고 말하는 걸 가장 싫어했던 듯 한데 지금의 세대들에겐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인물일 것이다.

 

그의 명언으로 꼽히는 "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는 말만 보아도 평소 그의 성향을 잘 알 수 있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故정주영, 그는 대통령에 오르지 못했다.

 

 

정주영도 끝내 못해낸 일, 대통령 당선

 

기업인으로는 재벌까지 되었던 정주영. 그는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정계에 뜻을 둔다.

그리고 실제로 통일국민당을 창당하고 국회의원에 도전, 당선돼 의원직 활동을 하기도 했다. 정주영은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대권에 도전할 준비를 한다.

지금도 개판이지만 당시에도 정치권은 개판이었다. 국민들은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에서 대기업 총수까지 올라간 그의 도전에 박수를 보냈다.

 

14대 대선에서 그는 끝내 대권에 오르지 못했다. 당시 대통령은 김영삼 후보가 당선됐다. 그리고 그의 임기가 끝날 무렵 우리는 IMF를 맞이했다. 1998년 정주영은 다시 한번 대권에 도전하고자 했지만 그의 대권 도전을 반대했던 측근이 후보 등록을 하지 않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말이 있다.

아무튼 마음 먹은 일은 반드시 해내고 말았던 정주영이 끝내 못 이룬 일은 바로 정치였었다.

 

 

1998년 6월 소 500마리를 이끌고 직접 북한으로 간 故정주영, 금강산 관광을 이끌어 낸 장본인이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큰 기여를 한 인물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약이 체결 된 후 줄곧 북한과 우리나라는 앙숙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끊임없는 북의 도발에 우리 정부는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 밖에는 없었다. 겨우 전후 복구가 되고 조금씩 살만해지고 있는데 전쟁이 또 발발할까봐 이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대북 정책이 늘 제 자리였던 것도 바로 그런 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향이 북한이었던 정주영은 당시 누구도 감히 시도해보지 못한 일을 구상해낸다.

 

바로 북한에 소 500마리를 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소 501마리를 이끌고 직접 평양으로 가기도 했다.

유래없던 이 방북 일정에 당시 국내는 물론 해외 언론도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현대가는 북한 김정일과 돈독한 유대 관계를 맺는 계기가 되고 현대는 이를 활용해 금강산 관광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북한은 대한민국 국적자라면 지금도 여행이 어려운 국가이다. 사실 안된다고 봐야 한다.

비록 일부 지역이긴 해도 우리는 이 사업을 통해 북한 땅을 밟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2000년 6월 당시 북한의 김정일과 함께 찍은 사진

 

 

| 故정주영의 실천주의 , 시대를 막론하고 배워야 할 점

 

1950 ~ 60년대 국내에서 탄생한 재벌 기업들을 보면 저마다의 특징적인 주의가 하나씩 있다. 그 중 현대의 故정주영은 바로 '실천주의'이다. 그처럼 잠을 줄이고 일에 몰두하라는 건 아니다.

해보지 않고 두려워 하기 보다는 해보고 깨우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의 지론은 보고 배워야 할 것이다.

 

혹자들은 삼성 창업주 故이병철, 현대의 故정주영 등 국내 기업사의 전설들의 창업 일화를 들으면 "그때니까 가능했던 일"이라고 평가하면서 마치 자신들도 그 당시에 태어났다면 그들 못지 않게 했으리라 말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훗날 그들의 역사를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이야기지, 만약 그 당시에 태어났더라면 그냥 아무것도 못하고 사회와 시대에 순응하며 살았을 것이다. 왜? 지금도 별볼일없이 사는 걸 보면 그때 태어났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요즘 시대가 당시의 사회보다 더 치열하고 경쟁적이라 생각하겠지만 그 당시에도 그랬을 것이다.

더구나 당시에는 시대적으로도 더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다. 그런 점을 보면 지금보다 그들이 더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처절하게 살았을지 짐작할 수 있다.

 

역사에서 만약이란 없지만 그래도 아산 정주영이 14대 대통령에 올랐다면 정말 IMF는 오지 않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