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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꾸준히 필모를 쌓아오다, 연기파 배우 '이성민'

믿고 보는 연기파 배우로 거듭난 배우 이성민

 

 

대한민국에는 시청자, 관객들이 믿고 보는 연기파 배우들이 몇 있다.

그가 나온 드라마, 영화는 재미를 떠나 어떤 울림이 늘 존재한다. 우리는 그러한 연기를 하는 배우를 가르켜 메소드 연기라고 부르는데 배우 이성민이 바로 그런 배우 중 한 명이다.

메소드 연기란 '극사실주의 연기를 하는 것으로 극중 배역과 자신을 일원화 시키는 연기'를 말한다.

 

하지만 이런 메소드 연기는 하루 아침에 생겨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타고난 천부적인 재능도 아니다.

오랜 세월 묵묵히 묵혀왔을 때 비로소 탄생되는 연기력인 것이다.

 

이성민은 1968년 10월생으로 올해 56세이다.

키는 175cm로 적당한 체격을 지니고 있으며 가족으로는 아내와 딸이 있다고 한다.

군필로 1987년 연극 무대를 통해 배우로 데뷔했다고 한다.

 

 

 

1. 배우의 꿈은 고교 시절, 전역 후 무작정 대구로 건너가 극단 생활 시작

 

이성민이 처음부터 배우의 꿈을 키웠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고교 시절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한 연극을 보고 막연하게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그는 부모님 몰래 배우의 꿈을 키우시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가족들의 반대는 극심했지만 이성민은 군 전역 후 알고 지내던 극단 연출가의 말에 무작정 대구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극단 생활을 시작했다. " 따로 돈은 못 줘도 담배값이랑 밥은 먹여줄께. "

 

지금도 극단 생활은 가난의 대명사로 취급받는데 하물며 1980년대인 당시에는 오죽했을까.

그나마 쥐꼬리같은 약속 된 돈마저도 제때 지급되지 않는 때가 많아 끼니를 해결하지 못할 때가 많았었다고 이성민은 회상했다. 남들이 먹는 자리에서 끼니를 해결한 적이 많았었다고.

 

 

 

이성민에게도 무명의 설움이 존재했다. 지금은 대패삼겹살을 쳐다도 보기 싫다는 이성민.

 

 

당시 숙소도 이른 바 '달방'으로 방충망도 없고 가재도구도 하나 없는 텅 빈 허름한 곳이었다고 한다.

이때 이성민은 배고픔에, 그리고 암울한 미래에 많이 울었다고 했다. 그리고 극단 생활을 하던 도중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다고 한다. 아내는 당시 무용을 전공한 안무가로 당시 이성민이 맡은 배역에 춤 동작이 있어 이를 배우기 위해 소개받은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이성민의 열정에 반한 아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찾아왔다고 한다.

 

 

 

2. 가난한 연극단원, 그리고 결혼...

 

본인 미래도 책임질 수 없던 연극배우였던 이성민이 당시 가진 돈은 200만원.

아내와 결혼은 했지만 결혼생활이 궁핍했던 건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을 것이다. 공과금조차 낼 돈이 없어 장인의 카드로 공과금을 해결해야 했고 이때 장인은 딸의 집에 잘 오지 않았었다고 한다.

이유는 사위의 기를 죽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아내의 임신은 축복이지만 당시에는 부담이었다고 고백한 이성민, 그의 아내는 연극 안무가이다.

 

 

경주로 떠난 여행에서 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이 사실을 아내의 후배에게 들었던 이성민은 " 그때는 분명 축복이었지만 당시 나는 부담이었다. "라고 회상했다. 아내와 자신이 굶는 것은 그래도 버틸 수 있었지만 아이까지 굶길 수는 없었기 때문.

점점 성장하는 딸에게 고기를 사주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1인분에 1000원이던 대패삼겹살을 사주었는데 이때의 설움 때문인지 유명 배우가 된 지금은 대패삼겹살을 쳐다도 안 본다고 한다.

 

이성민은 알고 지내던 동료의 제안에 아내와 딸을 대구에 두고 서울로 상경하게 되는데 " 3년만 도전해보고 안되면 돌아오겠다. "라는 약속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3년이 지났어도 이성민은 무명이었다.

이쯤되면 무어라 채근할만도 하지만 이성민의 아내는 단 한번도 이성민에게 보채거나 채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의 미안함과 고마움이 커서인지 지금은 각종 시상식을 다녀온 후에도 아내가 " 쓰레기 좀 버리고 와. "라고 하면 군말없이 쓰레기를 버리러 나간다고 한다.

 

 

 

3. 기다림 끝에 만난 인생작

 

지금의 이성민을 시청자들이 기억하게 된 인생작이 그에게도 찾아왔다.

2010년 MBC에서 방영 된 드라마 < 파스타 >가 시작이었다. 이 작품에서 이성민은 파스타집 바지 사장인 설사장 역을 맡아 주인공 이선균과 대립구도를 갖는 나름의 악역을 연기했다.

드라마의 초기 설정이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선균에 의해 쫓겨난 설사장을 복직시키라는 시청자들의 복직 운동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때 이성민은 연기 하는 보람을 느꼈었다고 한다.

 

 

 

이성민의 인생작, 2년마다 이성민을 각인시킨 작품들로 오늘의 이성민을 만든 인생작들이다.

 

 

드라마는 성공했지만 이성민의 입지가 좋아진 건 아니였다. 하지만 2년 뒤 MBC에서 방영한 메디컬 드라마 < 골든타임 >은 배우 이성민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인생작이 됐다.

중증외상환자들을 주로 담당하는 최인혁 역을 맡은 그는 드라마 촬영 1개월 전부터 운동화를 질질 끌면서 다녔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병원에서 지내는 의사 컨셉을 살리기 위해서였으며 오롯이 병원에서만 지내는 컨셉이었기에 7kg을 감량했다고 한다. 드라마는 대성공이었으며 이성민을 실제 의사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성민의 마지막 쐐기를 찍은 작품은 또 2년 뒤 다가온다. MBC가 아닌 TVN의 작품이지만 드라마 < 미생 >을 통해 배우 이성민의 연기력을 온 국민에게 각인시키는데 성공한다.

주인공은 장그래 역을 맡았던 임시완이었지만 이성민이 연기한 영업3팀 오상식 과장이 더 유명세를 치뤘다.

 

 

 

 

 

 

4.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로 거듭

 

이성민은 다작 배우이다. 스스로 연기에 대해 늘 부족하다고 평가하면서 매 작품마다 맡은 배역과 본인을 일심동체시켜 최고의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연기파 배우 중 드라마와 영화 두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배우는 극히 드물다.

같은 연기를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겠지만 그 배역으로 살아야 하는 시간, 환경이 달라 드라마에서는 잘하지만 정작 영화에서는 못하고 영화는 잘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잘 못하는 배우들이 많은 것도 그러한 이유라고 한다.

 

이성민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모두 동일한 연기력을 선보이는 배우로도 유명하다.

또한 어린 후배 연기자들에게서도 늘 배울 점을 찾는 배우로도 유명하다. 이성민은 배우 송중기를 " 늘 겸손하면서 누구를 대하든 똑같은 배우 "라고 평가했고 배우 조진웅에 대해서는 본인과 흡사한 길을 걸어 온 동반자 같은 배우라고 설명했다.

 

오늘 날 성공한 연예인들을 보면 그 이면에는 긴 무명의 시간과 설움이 늘 있었다.

아마도 무명의 시간동안 겪은 아픔, 설움, 그리고 다양한 인간군상들에 대한 관심이 어떤 배역을 맡더라도 최상의 연기를 선보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