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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슈

" 주호민 사과하라. " 현직 특수학급 교사가 날린 일침

현직 특수학급 교사가 웹툰작가 주호민을 향해 일침을 날렸다.

 

 

웹툰작가 주호민이 자신의 아이를 담당했던 특수직 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해 많은 논란과 비난이 일고 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일편단심적인 사랑이야 당연하겠지만 주호민의 대처는 사실 정도가 지나친 부분이 없지 않다고 보는 것이 아마도 많은 분들의 공통 된 의견일 것이다.

아이가 교사에게 행하는 모든 언행은 이해되어야, 참아야 할 대상이지만 교사가 아이에게 하는 모든 언행은 아동학대가 될 수 있다는 이 다소 이상한 논리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아이, 아동 문제에 있어 관대하고 편중, 편향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반증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직 특수직 교사의 일침, " 대부분 앤 설리번의 마음으로 살아간다. "

 

특수직 교사인 A는 자신의 SNS에 주호민을 향한 일침성 글을 게시했다. 경기도 교육청 소속이라는 A는 글에서 " 당신네 부부는 가슴에 손을 얹고 설리번 선생님보다 더 고상한 인격자라고 확신할 수 있나. "라고 일침을 날렸다.

앤 설리번은 미국의 사회운동가로 잘 알려진 헬렌 켈러를 가르친 스승으로 그녀 역시 시각, 청각, 언어 장애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헬렌 켈러의 보모가 되어 48년간 함께 생활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헬렌 켈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스승 '앤 설리번', 두 사람 모두 장애를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A 교사는 " 나도 교사로 재직하면서 말도 안되는 분에 넘치는 축복, 칭찬을 받아봤지만 아직 설리반이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주호민 당신은 건드리면 안되는 것을 건드린 것이다. 인간의 자존. 제일 추악한 게 바로 밥그릇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것 "이라며 주호민의 행동을 강하게 비판했다. 

 

더불어 " 버스에서 대변을 본 지적장애 제자가 있었다. 그 아이가 놀림받을까 손으로 그것을 주워담는 것을 상상이나 해보았는가. 자폐를 가진 제자가 자위를 해서 사정한 흔적을 누가 볼까 휴지로 닦고 침묵한 적 있는가. 난 그런 것들이 단 한번도 역겹거나 더럽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 같은 일개 교사도 그 정도의 소명은 영혼에 음각하고 살아간다. "라고 덧붙였다. 쉽게 말하면 특수직 교사들은 일반적이지 않은 제자들과 생활하다 보니 많은 부분에서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설명하신 듯 하다. 

 

따라서 주호민에게 신고를 당한 교사가 어떤 악의나 학대를 할 의도로 그런 발언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녹취파일을 들어보거나 당시 상황을 본 것은 아니므로 해당 교사의 발언 의도나 취지를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20년이 넘는 베테랑급 교사가 현재 교육 현실을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닐텐데 무분별하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의 발언을 문자로 나열했을 때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글자에는 감정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읽는 사람에 따라 오해를 할 수 있겠지만 전후 사정, 아이의 행동, 교사의 제지라는 과정을 놓고 본다면 그것은 학대가 아니라 교육의 일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 웹툰작가 주호민

 

 

| " 아이에게 고통이나 상처, 미쳤어? 아동학대잖아! "라는 인식 자체가 잘못

 

우리는 흔히 아이가 사회 규범이나 질서에 반하는 행동을 했을 때 이를 미소와 함께 지켜주길 바란다.

이것을 해하는 것은 동심을 파괴하는 행위이고 어른이 아이에게 해서는 안되는 행위로 단죄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 아동학대 '라고 단정짓는다.

 

그러고 보면 학대와 가르침에 있어 그 경계가 다소 애매하고 이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아이가 상처를 받는다는 자체를 학대로 해석한다면 부모도 아이에게 매일같이 학대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들이 하는 교육은 사랑이고 교사가 하는 교육은 학대라는 논리는 맞지 않다고 본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때론 아이가 원치 않는 제지, 단호함을 전달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아이들은 아직 질서와 규칙, 사회성이 부족하다.

본인이 즐거우면 좋은 것이고 즐겁지 않으면 불편하고 나쁜 것이라 판단한다. 어른들처럼 왜 참아야 하는지, 왜 해서는 안되는지 등과 같은 자각이 부족하다. 그래서 아이인 것이다.

 

아이가 실제 상처를 받았는지, 그냥 일순간 불쾌하고 말았는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 우리 아이를 정서적으로 학대했다. "라고 단언할 수 있었을까. 그냥 아이가 처한 환경이 보기 힘들어 그 마음이 애먼 교사에게 표출 된 것은 아닐까.

우리 아이는 잘못을 한 게 아니라 단지 좀 느리고 남다른 것인데 이를 장애로 규정하고 마치 어떤 특수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한 학교에 대한 원망이 교사에게 화풀이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이미 같은 반이던 동급 여학생에게 고통과 상처를 준 것은 주호민의 자녀이다.

아이라는 신분적 표현을 배제하고 본다면 교사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왜 원래 학급으로 못 가는지, 친구들은 왜 못 보는지를 이야기해 준 것이다. 아이가 행한 행동에 대한 결과를 설명한 것이 학대라면 이 세상에 아동학대로 경찰에 가지 않을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하긴 아이가 업소의 물건을 어지럽히고 개봉해 이를 제지한 업소 주인에게도 화를 내고 학대 운운하는 게 바로 우리 사회의 현 주소임을 볼 때, 그리 놀랄 일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