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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의 삶

#. 어머니 목소리를 찾았다.

응답하라 1988 에피소드 중

 

 

드라마 ' 응답하라 1988 '을 보면 지금 MZ세대들은 이해하지 못할 1980 ~ 90년대의 우리네 일상이 담겨져있다.

나 역시도 MZ세대에 속하긴 하지만 이제는 꼰대가 되어버린 40대의 아저씨일 뿐이고 1988 드라마의 시대를 살았던 세대일 뿐이다.

 

1988 에피소드 중 정봉이 아빠(김성균)가 생일만 되면 기운이 없어하는 모습을 담긴 에피소드가 있다.

평소 장난끼많던 모습은 간데없고 기운없이 축 쳐진 정봉이 아빠.

정봉이 엄마는 그런 남편의 기운을 되찾아 주기 위해 여러모로 애를 쓰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끝내 생일만 되면 기운이 없어지는 이유를 알게 된다.

바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는 걸 말이다.

우연히 찾은 큰 아들 정봉의 9세 때 녹음 테이프에 담긴 어머니의 생전 육성.

 

사실 드라마를 볼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차피 사람은 언젠가는 죽을 것이고 그게 당연한 자연의 섭리이니 말이다.

내 부모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것이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어머니 육성을 듣고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지병도 없던 어머니가 돌연 돌아가셨을 때 형과 나는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병이 있으셨던 것도 그렇다고 평소 잔병치레가 있으셨던 분도 아니였기에.

또한 사고도 아니였다. 그냥...마치 몰래카메라처럼 잠깐 아프시고는 떠나셨다.

그렇게 7년이 흘렀다. 생전 고생만 하시던 어머니였기에 내게 어머니는 특별했다.

어머니의 유품 중 상당수를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지만 목소리만큼은 없었다. 예전에 사용하던 폰에 있긴 했었지만 그때는 따로 저장을 해두지 않아 사라졌다.

 

나는 그것을 크게 후회했지만 이제 어머니의 목소리를 다시는 못 들을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형이 조카의 어린 시절 영상들을 정리하다 우연히 어머니의 육성이 담긴 파일을 찾은 것이다.

40초짜리 동영상은 지금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조카의 어린 시절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다.

3세때쯤 되어보이던 영상에는 어린 조카가 덩실덩실 재롱을 부리는 영상이 있었고 웃음소리와 함께 연신 " 잘한다 "를 외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다시는 못 들을 줄 알았던 엄마의 목소리였다. 나는 한동안 영상만 반복해서 들었다.

이렇게라도 듣게 되어 다행이다.

 

 

어머니가 영면해계신 하늘안 추모공원, 매주 찾는 곳이다.

 

 

내가 지구에서 만난 최고의 여인은 바로 어머니였다.

 

나는 어머니 생전에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도 해드린 적이 없었다.

간지럽기도 했고 딱히 모자지간에 그런 표현을 꼭 해야 하나 싶기도 했었다. 늘 이런 저런 일만 시켰지, 한번도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드린 적도 없었다. 그땐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존재라고 여겼다.

 

어머니는 해외에 있는 내게 종종 메일로 미안하다는 말씀을 자주하셨다. 물론 우리 어머니는 메일을 할 줄 몰랐다.

그 메일은 어머니 친구 분께서 어머니 대신 보내주는 메일이었다.

그때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머니께 말을 했었다.

 

 

어머니. 내게 미안해 하지 말아요. 고맙다고 하지도 말아요.

당신은 내가 지구에서 만난 최고의 여성이니까요. 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어머니. 

 

 

이 말을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