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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슈

점점 제사를 거부하는 대한민국, 나라가 소멸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요즘 대한민국에서는 제사를 거부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내 조부모님은 전형적인 옛날 분이셨다. 1910 ~ 20년대에 태어나셨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 명절과 제사는 그야말로 절대 빠져서는 안되는 행사 중 하나였다. 몸이 아프거나 일 때문에 외지에 있지 않는 한 제사에는 가급적 참석하는 것이 규칙이었고 모두들 조부님의 뜻에 따랐다.

그러다보니 내게도 그러한 면이 남아있다.

물론 이제 조부모님의 제사는 큰 집에서 지내고 나는 어머니 제사만 지낸다.

그리고 어머니 제사는 절대로 빠질 수 없는 행사로 내게 자리잡혔다.

평생 고생만 하다 많지 않은 나이에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제사라도 잘 챙겨드려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내게 제사는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이요, 어머니께 일년에 한 두번 따뜻한 밥을 지어 올리는 효이다.

어떤 분들은 " 돌아가신 다음에 그러면 뭘 하냐? "라고 타박할 수도 있겠지만 생전에 못 다한 효도를 이렇게라도 하고 싶은 것이 아들의 마음일 것이다.

 

 

 

제사를 거부하는 가정이 늘어나는 대한민국, 나라가 망하는 과정이라 생각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더 이상 명절은 즐거운 고향 나들이가 아닌 귀찮고 힘든 고역이 되어 버렸다.

명절 전에 잠시 내려가 벌초를 하고 명절에는 해외로 떠나는 인구가 늘어나고 명절만 되면 고부간, 부부간의 갈등이 매번 기사의 1면을 장식한다. 이제 언론사들도 의무적으로 갈등을 고조하는 기사만 올릴 뿐, 훈훈한 명절 기사는 아예 올릴 생각도 없는 듯 하다. 어쩌면 사회가 이 지경이 된 것도 언론의 갈등 조장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 시대에 삼강오륜(三綱五倫),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배우고 실천하자는 것은 아니다.

또한 자신의 집안 제사를 자신들이 하기 싫다는데 그것에 대해 뭐라 왈가왈부 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나는 " 뿌리는 모르면 미래도 없다. "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말은 꼭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통용되는 말이다. 서양에는 제사 문화는 없지만 집안의 내력, 뿌리에 대해 굉장히 많은 것을 대대로 알려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개 외국의 성은 그 집안이 해오던 직업에서 유래된 것들이 많으니 말이다.

 

국내에는 100년 이상을 이어오는 가업이 거의 없지만 해외에는 수백년을 이어오는 가업을 잇는 집들도 많은데 모두 그러한 이유이다. 뿌리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대대로 발전시키며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진정 강한 힘을 내는 원동력이라 믿는다고 한다.

 

 

 

제사는 귀찮아도 해외여행, 외국 기념일은 잘 챙기는 현상이 씁쓸하기만 하다.

 

 

 

그냥 제사가 귀찮을 것이다. 남편 집안 제사를 두고 " 남의 집 제사를 왜 내가... "라고 한다는 자체가 이미 문제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부부간 갈등이 안 생길 수 없다. 남편 집이 남의 집이니 아내의 집이 남의 집인 건 당연할 것이다.

배우자의 집안을 남의 집이라 생각한다는 게 올바르진 않다고 생각한다.

제사는 귀찮아도 집안에서 내려오는 재산은 소중하고 제사는 번거롭지만 해외여행 준비, 외국 기념일 준비는 즐겁다고 생각한다니 그야말로 나라가 망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다.

 

역대 조상님 제사까지는 지낼 필요가 없겠지만 최소한 부모 제사는 지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는 강요하는 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말기의 제사를 지내는 모습

 

 

배우자에게 바라는 딱 하나의 조건, " 부모님 제사는 반드시 지내야 한다. "

 

얼마 전 친구가 내게 물었다. 아버지가 요즘들어 자꾸 이상한 말씀을 하신다며 걱정을 하기에 왜 그러냐고 물으니 " 만약에 아버지가 죽거든 고향 산에다 뿌려라. "라고 하셨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 부모님이야 자식들이 귀찮을까봐 그렇게 말씀을 하시지만 만약 그 시기가 오면 형이랑 잘 상의해서 결정해라. "라고 조언해주었다. 

 

우리 어머니도 생전에 그런 말씀을 하셨다. " 너희야 내가 죽어도 엄마니까 찾아봐서 들여다 보겠지만 네 자식들은 어디 그러겠니. 번거롭게 하지말고 화장해서 산에다 뿌려다오. "라고 하셨는데 나와 형은 어머니를 납골당에 모셨다.

워낙 갑자기 돌아가신 탓에 경황이 없던 것도 이유였지만 차마 어머니를 그렇게 모실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배우자에게 원하는 게 딱 하나 있다.

다른 건 다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지만 부모님 제사만큼은 냉수 한 그릇을 놓고 절을 하더라도 반드시 집에서 지내야 한다는 원칙이다. 물론 배우자의 부모님 역시 동일하다. 

어머니는 내게 " 내 아들이 소중하면 남의 아들, 딸도 소중한 법이다. 너한테는 내가 엄마이니 소중해도 네 처에게 그렇게 바라면 안된다. 네가 장인, 장모를 존경하고 공경하면 자연히 네 처도 따라하게 되어 있다. "라고 가르치셨다.

 

제사상을 차림에 있어 남좌여우, 반서갱동, 어동육서 같은 규칙은 지켜야 하지만 올리는 음식은 딱히 정해진 법도가 없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집안마다 올리는 음식은 다양했다고 하니 조금 번거롭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준비한다면 그 역시도 즐거운 추억이 되지 않을까 한다.

자신을 낳아 준 부모님의 제사상도 귀찮다면 20살이 넘어서면 독립을 해서 스스로 살았어야 하지 않을까.

받는 건 좋으나 하는 건 싫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