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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일이?

부모와 연 끊겠다는 딸, 아버지의 눈물? 문제는 부모의 훈육 방식

다 큰 자녀와 갈등을 빚는 부모들이 은근히 많다. l internet

 

 

 

 

대개 자녀들은 어려서는 크게 부모의 뜻에 반항을 하지 않는다. 흔히 ' 가정에서 사랑을 받지 못해 삐뚤어졌다. '라고들 주장하지만 이건 자기 합리화, 장기방어적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사춘기로 인해, 친구들에 의해 어긋난 것이고 이로 인해 부모와 갈등을 빚게 되는데 대부분 이 과정에서 사랑받지 못했다, 이해해주지 않았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누차 말하지만 부모라고 해서 꼭 훌륭하고 숭고한 사랑이라고 말하진 않는다.

때론 무책임한 부모들도 세상에 많으니 말이다.

 

새 해부터 커뮤니티에 ' 대학생 딸이 연을 끊겠다고 합니다. '라는 어느 아버지의 사연이 올라왔다고 한다.

사연자는 딸의 아버지로 대학생 딸, 중학생 아들을 두었다고 설명하면서 아들은 첫째와 나이차가 있다 보니 조금 응석받이로 키웠는데 대학생 딸은 아니였다고 했다.

사연자는 " 제가 능력이 없다보니 어머니를 모셨고 아내가 근 20년간 시집살이를 많이했다. 저는 늘 아내의 편이었고 그래서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았지만 서로 의지하며 원만히 살아왔다. "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대학생 딸이었다. 종종 부모와 갈등을 빚을 때면 " 최악이다. ", " 해주는 것도 없이 괴롭힌다. ", " 부모님이 늙으면 부양은 커녕 연을 끊을 것 " 이라는 말을 자주 해왔다고 했다. 설명에 따르면 과거 딸이 성장기 과정에서 아내에게 모진 말과 몇 차례의 손찌검을 당한 것으로 보였다. 사연자는 이에 대해 딸에게 몇 번이나 사과를 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사연자도 " 이런 딸의 모습에 질릴대로 질린 상태 "라고 했는데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녀의 차별이 가장 나쁘지만 개선의 여지는 있다

 

무책임한 부모도 문제지만 자녀를 차별하는 부모도 가히 올바르다고 할 수는 없다.

아무리 깨어있는 척, 글로벌 시대에 발 맞추는 척을 해도 한국의 부모들은 기본적으로 자녀 훈육에 대해 무지한 면이 좀 있을 수 밖에 없다. 가장 큰 이유는 본인들 스스로가 그렇게 성장하지 못했고 두번째는 TV나 영화, 인터넷을 통한 정보로는 흉내를 낼 수는 있어도 지금까지 쌓아 온 마인드를 개선시킬 수 없다. 

 

과거에는 장남우선주의가 강하다 보니 부모가 장남에게 거는 기대는 엄청났고 사실상 아버지를 제외하면 집안 내 서열 2위는 당연히 장남이었다. 아마 유일하게 아버지의 뜻을 꺽을 수 있는 발언권도 장남에게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장남이 늘 최고의 대우를 받는 건 아니다. 아무래도 집안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 아버지의 기대, 조금의 잘못에도 따르는 질책 등 꽤나 무거운 역할을 감내해야 했으니 말이다.

 

 

 

 

부모의 역할이 처음이라 몰랐다는 것은 자기합리화에 가깝다. l 영화 '미나리'

 

 

 

 

부모 중에는 자녀의 훈육에 있어 차별을 하는 경우가 있다. 대개 첫째 아이에게는 사랑도, 관심도, 애정도 덜했지만 둘째에게는 많은 애정을 쏟아붓는 분들이 종종 있다. 사연자의 경우도 그러한 듯 하다. 다만 사연자는 첫째와 둘째의 나이 격차 때문에 응석받이로 키웠다고 하는데 이는 지극히 잘못 된 생각이고 논리이다.

부모로써의 입장에서는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딸의 입장에서는 성별에서 오는 차별, 환경에서 오는 차별이라고 느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누나로서 동생이 자신처럼 맞고 자라길 바라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딸이 느끼는 차별에서의 문제를 사연자 부부는 전혀 공감도, 느끼지도 못하고 있는 듯 하다.

그저 " 저게 커서 왜 저래?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부모가 공감하고 진심으로 첫째 자녀가 왜 그러는지 이해를 안하는데 문제가 해결 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직 가족간의 갈등이 해결 될 가능성이 조금은 남아있다는 점이다.

 

졸업반인 딸이 아직도 집을 뛰쳐나가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학비 때문에 버티는 것일수도 있지만 불만이 많았다면 사실 대학교 4학년의 나이에 집에 들어오진 않았을 것이다.

요즘 시대가 학력으로 취업이 결정되는 시대는 아니기 때문에 사실 부모와 연을 끊고 살 작정이었다면 졸업반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딸이 보내는 이 메시지를 부모가 제대로 읽지 못한다면 정말 나중에는 딸을 못 보게 될 수도 있음을 부모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자녀를 낳았다고 모두 훌륭한 부모가 되는 건 아니다. l internet

 

 

 

 

| 훗날 늙은 몸 그나마 부모 대우 받고 살려면

 

글을 보면 아버지라는 사연자는 매우 잘못 된 사고 방식을 가진 듯 하다.

능력이 없어서 어머니를 모셨고 그로 인해 아내가 시집살이를 많이 했다라고 하는데 정말 어머니가 그 글을 보셨다면 뭐라고 생각했을지 말이다. 딴에는 요즘 시대에 맞는 아버지로 보이고 싶어서 그랬는진 모르겠지만 어머니를 모시는 게 능력이 없다라는 건 잘못됐다. 그런 마인드로 자녀를 대했으니 그 자녀들이 과연 올바르게 성장할까.

 

조부모님과 성장한다고 해서 모두가 올바르게 성장하진 않지만 나는 어려서 조부모님 밑에서 성장했다.

물론 학창시절 말도 못하게 사고를 치고 다녔지만 사춘기를 잘 극복하고 한국은 물론 여러 나라에서 IT 계열에서 나름 안정 된 삶을 살았다. 멋있게 보이려고 지어내는 게 아니라 퇴학도 여러 차례 당할 뻔 했고 아버지에게 맞기도 많이 맞았다.

무능한 아버지는 늘 제멋대로 였지만 그럼에도 불구, 내가 올바르게 성장한 배경에는 조부모님과 어머니의 헌신이 있었다고 나는 돌이켜 본다.

 

잘못의 원인을 딸에게서 찾으려는 부모, 몇 번이나 사과를 했는데도 막무가내로 발광하는 딸?

쌓이고 쌓인 한이 몇 번의 사과로 해결된다면 사과와 용서라는 말이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부모가 처음이라 첫째에겐 인색했고 그나마 경험 좀 쌓았다고 둘째에겐 관대한 부모의 훈육을 20대의 딸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봤을지 새 해부터 잘 생각해보시길 당부드리고 싶다. 내 생각에는 그저 시집살이에 대한 화풀이였고 어머니를 모신다는 이유로 아내의 눈치만 살핀 아버지의 무능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시집살이와 자녀 문제는 별개였어야 했고 폭언에 손찌검을 당하고 자란 첫째도 잘못 키웠지만 응석받이로 키우는 둘째도 그리 잘 성장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받는 것에 익숙해진 자녀는 결코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다.

받는데 익숙하기 때문에 베푸는데는 인색하다. 지금도 자신들의 문제를 딸에게서 찾으려고 한다면 나중에 자녀들에게 모두 버림받은 현실과 마주하게 될 게 분명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