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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퍼스트 레이디에서 범죄자로, 불운의 여인 - 박근혜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대한민국 최초 부녀 대통령, 대한민국 정치 엘리트 코스 선두주자.

박근혜하면 떠오르는 많은 키워드들이 있다. 그녀는 대통령의 장녀로 태어나 영애로, 퍼스트레이디로, 그리고 대한민국 정치의 핵심인사였다. 어찌보면 여성의 사회 진출이 꽤나 어려웠을 시절에도 그녀만큼은 아버지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으로 상당히 정재계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오르기도 했다는 점에서 그녀의 삶을 '불운'이라 표현할 수도 있을 듯 하다.

 

대한민국의 정치 대모이자 대통령이었지만 지금은 503으로 더 익숙한 범죄자 박근혜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참고로 MT당원도 아니고 박근혜 지지자도 아니며 정치적으로는 중립을 지키려고 하는 블로거일 뿐이다. 또한 인터넷 정보와 개인적인 주관이 곁들여진 포스팅이므로 어디까지나 "그렇구나."정도로 바라봤으면 좋겠다. 

( 참고로 본 포스팅에 게시 된 사진은 모두 인터넷 구글 검색으로 캡쳐한 이미지임을 밝힙니다. )

 

 

 

1. 박근혜, 대통령의 딸로 태어나다.

 

故박정희, 육영수 여사 가족 사진. 장녀 박근혜와 근령, 그리고 남동생 지만이 있었다.

 

 

박근혜는 1952년 2월 2일 대구에서 출생한다. 당시 군인이던 아버지 박정희의 부임지가 변경됨에 따라 이사를 자주 다녔다고 한다. 9살이 되던 1961년 5월 16일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는데 성공하고 이에 따라 그녀도 가족들과 함께 청와대로 입성하게 된다.

옛부터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받지 않는다."라고 할 만큼 박정희의 군부 독재시기는 지금도 두 부류로 평가되고 있다. 경제 발전의 기초를 닦는데 기여한 공을 높이 사는 측면도 있고 독재와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측면도 있다.

아무튼 이때부터 박근혜는 영애(대통령의 딸)로써 화려한 인생을 살게 된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사망하고 박근혜는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1974년 8월 15일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사망하게 되고 그녀는 급히 한국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빈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육영수 여사에 대해 잠깐 소개하자면 꽤나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45년에는 1년 정도 교사 생활을 했으며 큰 아버지는 조선 말기 문신이었으며 사촌 오빠는 독립운동가였다고 한다.

박정희를 소개로 만나 결혼을 하게 됐을 때 여사의 부친은 크게 반대했으나 육영수 여사는 가출하여 박정희와 함께 동거를 시작했다고 알려졌다. 

 

더불어 11년간 박정희를 내조하면서도 여러 복지시설을 설립하고 사회 복지 운동에도 많은 힘을 쏟은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육영수 여사가 당시 저격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박근혜 인생도, 어쩌면 우리 나라의 역사도 지금과는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5년 뒤. 아버지 박정희마저 저격당하면서 그녀는 부모를 모두 총탄에 잃은 비운의 운명을 맞게 된다.

가족사, 그리고 어떤 행적을 떠나 부모님을 모두 불의의 사건으로 잃게 된 부분은 상당히 불행한 일이며 동정이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이때의 박근혜 나이가 청소년기는 아니라고 하지만 당시의 시대상이나 사회상을 봤을 때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 부모를 졸지에 잃고 홀로 격동의 시기를 보내야 한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가 주위에 의지하고 스스로의 판단보다는 주위의 보살핌이나 대리 해결에 의존하게 된 것도 이러한 가정사가 한 몫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박근혜는 1997년 정치에 입문해 16대~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치계의 대모로 활약하게 된다.

 

 

2. 정계에 진출한 박근혜, 당시 16대부터 19대까지 4선 의원을 거치다

 

박근혜는 19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를 지원하면서 정치계에 입문하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 대구 달성 재보궐 선거에서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인생을 시작한다.

물론 그녀가 뛰어난 지식이나 어떤 능력을 선보여 당선되었다기 보다는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향수와 후광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보편적인 시각이다.

 

박근혜는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불법 대선 자금 사건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을 맞은 당시 한나라당의 당 대표로 선출된다. 위기에 몰린 한나라당을 그녀는 천막당사를 통해 기사회생시켰고 해산 위기의 당을 가까스로 살려놓는다.

그리고 여러 번의 선거를 승리시키면서 선거의 여왕, 정치계의 대모로 우뚝 서게 된다.

 

물론 그 모든 원동력은 아버지 故 박정희의 후광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당시만 해도 경제 위기 때문에 "새마을 운동"에 대한 향수와 다시 한번 나라를 일으켜 줄 지도자를 갈망했던 대한민국의 민심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3. 여세를 몰아 대권 도전, 첫 여성 대통령 그리고 아버지를 능가하는 딸이길 바랐던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격돌했지만 그녀의 승리로 일단락 됐었다.

 

 

어쩌면 이때만 하더라도 박근혜의 대권 진출과 대통령 당선은 사실 예정 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성으로는 쉽지 않은 국회의원을 연달아 4선까지 돌파했다는 건 이미 상당한 정치 기반이 갖춰져있다는 뜻이며 그것이 아버지의 후광이라 할지라도 아무튼 그녀가 당시 대한민국 정치사에 있어 큰 영향을 가진 인물이었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또한 세계적인 여성 인권의 향상과 맞물려 "우리 나라에도 여성 대통령이 나온다면..."이라는 기대 심리도 그녀의 당선을 유리하게 작용시키는 요소였을 것이다. 물론 당선 후에도 선거 조작이라는 등의 루머가 많았지만 아무튼 박근혜는 아버지에 이어 딸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유일한 부녀 대통령이자 첫 여성 대통령으로 한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어떤 식으로 당선이 됐든 어렵게 오른 자리이니만큼 그리고 아버지의 명예나 이미지 회복에 힘을 쏟는 것이든 나라 운영에 제대로 능력을 발휘했더라면 모르겠지만 당선 후 박근혜는 더 이상 정치인 박근혜가 아니였다.

" 통일 한국 대박 "이라는 슬로건을 펼쳤으면서도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등의 오락가락 행정이 펼쳐지더니 곧 온갖 추잡한 루머가 여론을 들끓게 만들었다.

 

그리고 온 국민을 경악하게 만든 세월호 침몰 사건이 발생하고 이때 그녀가 대통령으로써 일선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지휘를 했더라면 아마도 그녀는 모든 논란을 잠재우고 능력은 그저 그랬지만 어쨋든 대한민국 제 18대 대통령으로써 적당히 지내다 물러난 인물로 남았을지도 몰랐다. 

 

아무것도 모른 채 구조만 기다리던 학생 포함 약 300명의 국민이 현장에 도착해 뱅뱅 돌기만 하는 해경을 바라보며 그대로 물 속으로 가라앉고 만 것이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침몰했더라면 비난은 있었을지 몰라도 탄핵까지는 안됐을 것이었다. 하지만 해경과 구조선박이 모두 도착한 상태에서 충분히 구조가 이루어져야 할 상황 속에서도 그야말로 헛된 시간만 낭비한 이 사건으로 국민은 대통령을 심판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밝혀진 충격적인 사실. 비선실세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

 

 

4. 대한민국을 분노케한 비선실세, 그리고 문고리 3인방. 대통령은 박근혜가 아니였다...

 

세월호로 슬픔에 잠긴 대한민국 사회는 곧이어 드러난 충격적인 사실과 대면하게 된다. 대통령 박근혜는 그야말로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말이다. 실질적인 국정 운영은 문고리 3인방과 비선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의 손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었다. 그나마 문고리 3인방은 정치계의 인사이니 이해된다쳐도 최순실은 정치인도, 그렇다고 어떤 전문가도 아닌 일반인 신분에 불과했다.

 

여기서 문고리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첨언하자면 -문고리3인방-은 "대통령을 만나거나 어떤 정책이 보고되려면 이들 3인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로 문고리. 즉...방을 들어갈 때 잡는 장치 단계를 말한다.

따라서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의 승인을 거쳐야만 정책이나 제도가 실행되면 이때 대통령의 최종 승인이 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모든 실질적 권력을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이 결정하지만 대통령의 승인이 있어야 함으로 형식적으로 박근혜에게 보고, 재가를 얻었다는 말이다.

 

 

정유라, 이재용, 차은택 등 연루 된 인물들도 장난 아니였고....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 어두우니 자연 그들의 권력이 하늘을 찌를 수 밖에 없었고 당연하게 그들과 결탁 또는 이를 이용해 특혜를 받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비선실세 최순실의 딸 정유라는 인생 자체가 특혜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온갖 대우를 다 받았으며 삼성의 이재용 역시 그 자금과 여러 과정에서 연루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민의 지탄을 받아야 했다. 또한 블랙리스트 사건도 이때 드러나게 된다.

 

참고로 이때 늘품체조라는 율동에 가까운 체조가 국민 체조격으로 부각되고 여기에도 엄청난 이권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때 당시 스포츠 스타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김연아에게도 제의가 갔으나 김연아는 이를 거절해 불이익을 받았으며 체조 스타였던 손연재는 이에 참여, 각종 언론에서 부각을 받기도 했다.

이것이 드러나면서 김연아의 인기는 더욱 올랐고 손연재는 국민밉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손연재와 이재용은 상당히 불쌍하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손연재를 놓고 본다면 당시 손연재는 김연아에 비해 국제적인 입상 경력이 뒤떨어진데다 엔터테이너적인 면도 거의 없어 이름만 알려졌다 뿐이지, 사실 아무런 힘이 없었다. 김연아는 당시 워낙 레전드급 인기인인데다 국제적으로도 영향력이 높았기에 당시 정부로써도 쉽게 건드리긴 곤란했을 것이다.

 

또한 이재용 역시 아무리 대한민국 최고의 대기업이라고는 하나 정부의 강력한 압박에 당연히 손을 잡아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재벌가가 강하다고는 해도 국가를 이길 수는 없다.]

그들이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비난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할만큼 정부의 압력을 견디기엔 어쩔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5. 첫 탄핵 대통령의 불명예, 다사다난한 그녀의 인생의 끝은 더욱 초라하다 

 

박근혜는 현재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1952년생이므로 지금 그녀의 나이는 69세이다. 70세가 되는 내년에도 그녀는 교도소에서 보내야 할 것이며 특별히 사면되지 않는 한 아마도 교도소에서 생을 마감해야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의 잘못은 크고 많지만 인간으로 놓고 보자면 박근혜 역시 참 굴곡과 아픔이 있는 삶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부모를 일찍 여의었음에도 잘 먹고 잘 산 것은 모두 부친이 남겨 준 자금 때문이었겠지만 여유로운 경제력이 비단 삶의 전부는 아닐테니 말이다.

 

평범한 군인의 딸로 태어났지만 역사의 소용돌이에 영애가 됐고 퍼스트 레이디로 살았으며 정계에 입문, 화려한 정치인으로의 삶도 맛보았지만 그녀는 얻은 것도, 잃은 것도 많은 삶을 살았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을 듯 하다.

그냥 평범하게 태어난 그대로 군인의 딸로 성장해 학업을 마치고 결혼과 일을 하며 다른 이들처럼 살았더라면 아마 지금쯤은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할머니로 평범한 노후를 보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박근혜를 보면서 "스스로 주관있는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지만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깨닫게 됐다. 만약이라는 가정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만약 그녀가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했더라면,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에게 그러한 권력을 집중시키지 않았더라면 욕을 먹는 대통령은 됐겠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의 18대 대통령으로써, 첫 여성 대통령으로 이름은 남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